[노트북을 열며] 새벽배송, 포기해도 된다

입력 2022-05-1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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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헌 유통바이오부 차장

코로나19는 우리 삶에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산업계도 예외가 아니었고, 특히 유통업계는 어느 업종보다 많은 변화를 요구받았다.

비대면 쇼핑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자 유통업계는 ‘배송혁신’을 금과옥조처럼 여겨 너도나도 뛰어들었다. ‘다음날 배송’, ‘2시간내 배송’, ‘새벽배송’ 등 적자가 나든 말든 막대한 출혈경쟁을 벌였다. 결과는 대규모 적자로 이어졌다. 배송혁신을 주도한 이커머스 업체 중에서 흑자를 내는 곳은 1~2곳에 불과하다.

그러는 사이 인류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더불어 살기로 결정했다. 거리두기가 사라지고 외출이 자유로워지면서 예전만큼의 수요가 받쳐주지 못하는 현실이 기정사실화하자 대형 유통사들도 새벽배송에서 하나둘씩 발을 빼기 시작했다.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헬로네이처, 롯데쇼핑이 운영하는 롯데온 등이 최근에 새벽배송 포기를 선언했다. 롯데홈쇼핑의 새벽배송 ‘새롯배송’도 종료된다.

새벽배송 시장이 급격한 성장세가 점쳐지는 영역임은 확실해 보인다. 교보증권에 따르면 새벽배송 시장 규모는 2018년 5000억 원에서 2020년 2조5000억 원, 올해는 9조 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럼에도 기업들이 발을 빼는 것은 막대한 비용 문제 때문이다. 새벽배송은 엄청난 투자가 필요한 사업이다. 신선식품이 주력인 만큼 창고·배송차량 등 ‘콜드체인(냉장유통)’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 배송원과 물류센터가 밤 시간에 돌아가기 때문에 인건비 지출도 일반배송 대비 2배가량 높다. 이를 해결하려면 일정량의 ‘주문량’을 유지하는 ‘규모의 경제’ 효과가 필요하다.

국내 유통사 중 아직 이 문제를 해결한 곳은 한 곳도 없다. 새벽배송 시장을 개척한 쿠팡이나 마켓컬리는 물론이고 SSG닷컴 등도 여전히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마켓컬리와 SSG닷컴의 지난해 적자는 전년 대비 2배 이상 늘었고, 유일하게 흑자인 오아시스마켓도 흑자 규모가 절반 가까이 줄었다. 이들은 상장을 앞두고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해 인프라 등에 투자를 늘리고 있어 결국 치킨게임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출혈경쟁이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끝까지 버티면 살아남을 것’이라는 희망, 어쩌면 ‘여기서 멈추면 죽을 것’이라는 절박함으로 버티고 있지만 적자 행보를 영원히 계속할 순 없는 일이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새벽배송은 쿠팡, SSG닷컴, 마켓컬리, 오아시스 같은 강자들에게 넘기고 다른 미래 먹거리를 찾는 게 낫다는 것이 관련 업계의 중론이다.

지금 유통업계에는 ‘포기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경쟁사가 한다고, 시장 전망이 좋다고 투자를 지속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판단이다. 회사는 물론 장기적으로는 소비자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없다.

여전히 새벽배송 현장에서는 노동자들이 쓰러지고 있고, 초대형 물류센터 화재 등의 사고는 사회 문제가 되고 있지만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조그마한 소비재 하나까지 새벽배송을 시키면서 발생하는 쓰레기 과다 등의 문제도 우리 미래를 멍들게 하는 요소다.

코로나19도 끝이 보이는 시점에서 유통업계는 새로운 경쟁을 준비해야 한다. 강자는 강자들대로 수익성 개선을 고민해야 하고, 새벽배송에서 발을 뺀 기업들 역시 또 다른 새 먹거리를 찾아 나서야 한다. 새로 출범한 정부도 막무가내식 규제보다는 기존 대형마트 등의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열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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