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뿐인가. 얼마 전 어린이날도 만만치 않았다. 자전거를 갖고 싶다는 첫째 아이와 팽이에 한창 빠져 있는 둘째 아이 선물까지. 스테이크가 먹고 싶다는 아이들 성화에 외식은 패밀리레스토랑이었다. 불과 2~3일 사이에 돈이 물 새듯 빠져나갔다.
물가는 오르는 게 일이라지만 체감물가가 이렇게 들썩였던 적이 있나 싶다. 기획재정부 간부도, 한국은행 임원도 놀랄 지경이라고 말할 정도다.
실제 수치상으로도 최근 물가 상승률은 근래 보지 못한 수준이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4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6.85(2020년=100)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4.8% 상승했다. 2008년 10월 4.8%를 기록한 이후 13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원인은 분명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로 석유와 곡물 가격 등이 급등한 데다 중국의 코로나 봉쇄로 공급망이 충격을 받은 것도 물가를 자극하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거리두기 해제에 따른 수요 회복이 영향을 주고 있다.
물가 상승의 원인에서 알 수 있듯이 고물가가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서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살펴보면 미국 8.5%, 독일 7.6%, 영국 7%, 이탈리아 6.8%, 캐나다 6.7% 등이다. 같은 기간 한국은 4.1%를 기록했다.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두고 볼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정권이 이양되는 시기라는 점이다. 새 정부의 어깨가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됐다. 그런데 기시감이 든다. 과거 이명박 정부 초기 때와 상당히 비슷하다. 당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글로벌 국제유가 및 원자재가격 상승으로 4%를 넘어 5%대까지 치솟았다.
이에 이명박 정부는 52개 주요 생필품으로 구성된 이른바 ‘MB물가지수’를 구성하고, 이에 대한 집중 관리에 나섰다. ‘MB물가지수’라는 거창한 이름까지 붙이며 물가를 잡는 데 총력을 기울였지만, 효과는 없었다. 되레 집중 관리한 품목들의 가격 상승률이 다른 품목들보다 더 높은 기현상까지 나타났다.
상황만 비슷한 것이 아니다. 차기 정부 인사에 친이계 인물들이 대거 포진되면서 ‘2기 엠비(MB) 정부’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과거 MB 정부 때와 비슷한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그렇다고 결과까지 같을 것이라는 법은 없다.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만 않으면 된다. 이명박 정부의 실책은 물가를 잡고자 하는 정책 의지는 강했지만 타당한 정책적 접근에 나서지 못했다는 점이다. ‘인플레만 잡으면 된다’라는 생각에 민간을 때려잡으면서도 물가 폭등의 원인을 외부 요인에서만 찾았다. 그러면서 성장에 대한 집착도 버리지 못했다.
앞으로 들어설 윤석열 정부는 이를 반면교사로 삼으면 된다. 그런데 벌써 조짐이 좋지 않다.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110대 국정과제 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서민물가 안정을 위해 비축기능 강화와 수급 안정 대책을 통해 에너지·원자재 가격 상승 등 대외요인의 국내 파급영향 최소화 방침을 밝혔다. 배가 고프다고 하니 “밥을 먹어라”라는 답변을 내놓은 것과 뭐가 다를까.
그런 와중에 윤석열 정부가 30조 원대 제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 편성에는 속도를 낸다고 한다. 통화 당국에서는 성장보다 물가가 더 걱정이라는데 차기 정부는 수십조 원대 돈 풀기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SY지수’를 만드는 것보다 더 나쁜 상황이 올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