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근 칼럼] 물가·환율·금리 수렁, 스태그플레이션 공포

입력 2022-05-0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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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물가와 환율, 금리 등은 한국 경제의 핵심적인 거시(巨視) 변수다. 시장에서 맞물려 움직이는 물가·금리·환율이 서로 밀어올리는 상승작용을 일으켜 경기에 충격을 준다. 수출로 지탱하는 우리 경제는 주로 외부 요인에서 비롯되는 이들의 변동성에 특히 취약하다. 불안에 대응하기 위한 독자적 정책 운용도 매우 제한된다.

물가와 환율, 금리가 한꺼번에 치솟고 있다. ‘3고(高)’의 충격에 경제가 휘청거리고 돌파구는 보이지 않는다. 경기 추락과 함께 성장의 먹구름이 짙어진다. 이미 우리 경제가 고물가·저성장의 스태그플레이션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다는 위기감 또한 커지고 있다.

지난 3월 국내 소비자물가가 1년 전보다 4.1% 올랐다. 2011년 12월(4.2%) 이후 10년여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작년부터 진행된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불붙인 국제유가와 원자잿값 급등, 공급망 교란이 겹친 후폭풍이다. 오르지 않은 게 없는 심각한 물가에 서민생활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물가는 더 뛰게 되어 있다. 미국의 금리인상 등 긴축 리스크로 달러 강세와 환율 상승이 가속화하면서 수입물가 부담이 급증하고 있다. 한국은행 조사에서 4월 기대인플레이션율이 3.1%로 2013년 4월(3.1%) 이후 9년 만에 최고치를 보였다. 이는 향후 1년의 물가상승률에 대한 소비자들의 전망이다.

환율은 천장이 뚫렸다. 올해 초 달러당 1200원을 넘은 후 계속 가파른 오름세다. 지난주 원·달러 환율은 1272.5원까지 뛰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시장이 극도로 불안했던 2020년 3월 23일(1266.5원) 이후 2년 1개월 만에 가장 높고, 작년 초에 비하면 원화가치가 17% 이상 떨어졌다. 시장 전문가들은 환율이 1300원 선까지 치고 올라갈 가능성을 우려한다. 이 경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이다. 경제 주체들의 심리적 환율 경계선은 1200원이다. 이를 넘으면 외국인 투자자본이 급속히 이탈하고 다시 환율을 끌어올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올 들어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은 12조 원어치를 팔아치웠다. 국제금융시장의 위험회피와 안전자산 선호 영향이 크지만, 근본적으로 한국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에 대한 신뢰의 악화를 반영한다.

여기에 금리 공포가 닥쳐오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3월 제로금리를 벗어나 기준금리 인상의 시동을 걸었고, 이달 통상 수준의 2배인 0.5%포인트(p)를 한꺼번에 올리는 ‘빅 스텝’과 연내 여러 차례의 공격적 금리인상을 예고했다. 한 번의 인상폭이 0.75%p인 ‘자이언트 스텝’ 가능성도 높다. 우리 기준금리는 현재 연 1.5%이다. 하지만 미국 기준금리가 빠르게 큰 폭 오르면서 한국과의 금리 역전까지 우려된다. 우리 금리가 미국보다 높지 않으면 외국인 자본 유출과 환율 상승으로 이어지고 다시 물가를 자극한다. 한은이 앞으로 금리를 계속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우리 가계와 기업이 금리인상을 견디기 어려운 구조라는 점이다. 지난해 말 기준 가계부채 1862조 원, 기업부채 2650조 원 등 민간부채가 모두 4500조 원 이상으로 불어났다. 국내총생산(GDP)의 2.2배 수준이다. 특히 가계부채가 경제의 뇌관이다. 금리인상의 충격은 주택가격 폭등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로 집을 산 청년층과 다중채무자,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들에 집중되고 신용위험이 증폭된다. 기업들에도 직격탄이다. 현재 상장기업의 40%가 영업이익으로 대출이자도 못 갚는 한계기업들이다. 이들이 생존의 벼랑에 내몰리고, 투자와 고용이 쪼그라들어 경기를 후퇴시킨다.

세계은행(WB)은 에너지와 식량가격 상승이 향후 3년간 유지되면서 글로벌 경제가 과거 1970년대 경험했던 스태그플레이션에 다시 직면할 위험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새로 내놓은 경제전망도 몹시 비관적이다.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3월 제시했던 3.0%에서 2.5%로 대폭 낮추고 물가상승률은 3.1%에서 4%로 높였다. IMF는 앞서 한국의 스태그플레이션 위기를 경고하고 과감한 정책 대응을 강조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가장 대응하기 어려운 난제(難題)다. 인플레이션을 잡고 경기를 살리는 정책을 찾기 어려운 까닭이다. 경제 악순환이 불가피한데 지금 한국이 그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정책수단도 별로 없다. 곧 출범할 새 정부가 맞닥뜨린 최악의 경제 상황이다.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하지만 출구전략의 갈피조차 잡히지 않는다. 무너지는 경제를 살리려면 고통을 감수하고 비상한 각오로 기본구조를 재구축해야 한다. 물가를 잡고 경기를 방어하는 응급처방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민간의 투자 촉진과 혁신성장, 생산성 향상을 위한 규제의 혁파, 노동개혁, 산업구조 개편, 교육혁신 등 중장기 성장기반 확충의 초석(礎石)부터 새로 놓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kunny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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