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간의 패권경쟁과 기후위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에서 드러났듯이 세계 각국에서 기술과 경제가 안보의 중심에 자리 잡으며 산업정책이 경제정책을 선도해 가는 모습이다. 세계는 바야흐로 신산업정책의 시대를 맞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는 차제에 이러한 세계의 흐름을 간파하고 산업정책의 역할과 과제를 좀 더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산업정책은 살아있는 경제사회의 문화와 풍토, 나아가 발전단계와 산업·소비구조의 변화를 대상으로 한다. 이 대상에 따라 정책의 목적, 체계, 수법이 달라진다. 산업정책은 개별기업의 육성과 개별 산업진흥에서부터 산업구조 고도화 내지 조정까지를 그 영역으로 삼는다.
때문에 가격이론이 대상으로 삼는 개별기업 활동과 같은 미시경제학에서도, 경제정책론이 대상으로 하는 국가경제와 같은 거시경제학에서도 산업정책을 커버하지 못한다. 게다가 “산업정책은 시시각각으로 수행하고 있는 정책당국자의 노력의 축적으로서의 소프트웨어와 한시성이 그 진수다. 그러므로 개개의 정책보다도 정책형성 과정에 더 큰 의의가 있다”고 일본의 오노 고로 전 사이타마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설명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대전환’을 정책의 머리로 잡으면 디지털화, 그린화가 먼저 지적된다. 역(逆)글로벌화와 새로운 사회적 수요 대응도 그렇다. 자유·평화·번영을 기점으로 잡은 ‘신정부의 산업정책’을 앞세우면 인구변화, 기후변화, 사회안전망 등 비경제적 이슈까지 포괄하게 된다.
이러한 산업정책의 역할과 과제에 대해 조재한 산업연구원 산업혁신정책실장은 다음과 같은 3단계의 시대별 구분으로 접근했다. 우리 경제의 고도성장기와 외환위기(1986~1999) 사이에는 ‘공업발전법’을 통해 산업구조 전환과 업종·제품·공정혁신을 꾀했다. 이른바 수직적 산업정책의 시기였다. 이어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코로나19 위기(1999~현재)를 거치면서 ‘산업발전법’으로 기능별 혁신과 제도 혁신을 이끈 수평적 산업정책의 기간을 경험한다. 포스트 코로나의 국면에서 신정부의 산업정책은 글로벌 혁신경쟁을 선도하고, 사회적 수요를 반영하는 산업혁신정책의 시기가 예상된다. 조 실장은 이러한 관점에서 산업혁신기본법(가칭)을 제시한다. 포스트 코로나 국면에서 산업정책의 핵심 컨셉은 철저하게 민간의 의견을 청취· 실현하는 보텀업(bottom-up·하의상달) 방식이다.
마침 산업정책과 관련한 ‘신 3법’이 올해부터 본격 가동된다. 첫 번째로 ‘국가 첨단전략 산업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꼽을 수 있다. 이른바 반도체 특별법으로 불리는 이 법은 전략기술지정과 특화단지 지정, 특성화 대학운영 등이 주요 사업대상이다. 8월부터 시행된다. 국가 경제안보의 핵심정책으로 자리잡도록 법정부적 차원의 관리와 운용이 필요하다.
지난 3월부터 시행령이 발동되고, 9월중에 기후변화영향평가가 시행되는 ‘탄소중립기본법’도 있다. 이 법은 환경정책의 옷을 입었지만 속모습은 산업정책이다. 개별 정책마다 어떤 포트폴리오로 끌고 갈 것인지 어려운 결정들이 대기하고 있다.
오는 7월 시행 예정인 ‘산업디지털촉진법’은 산업혁신정책의 골간이 된다. 디지털 전환(DX)이 유행어처럼 되었지만 실제 현장과는 아직 거리가 있다. 산업디지털촉진법이 제4차 산업혁명의 성패를 가늠하는 리트머스시험지가 될 것임에 분명하다.
김주훈 전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원장은 “지금은 산업정책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할 때다. 개별기업과 산업대상에서 사회공동체로서 창의력이 있는 인적(人的)자본을 키우는 정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부분이 정부가 반드시 해야 일이라는 것이다.
신정부 출범을 계기로 산업부 주도 아래 신 3법을 중심으로 관련 정부기관, 산업체와 함께 소통과 협력의 산업커뮤니케이션을 꾀하면서 정책 추진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민관협력 파트너십을 먼저 구축해야 윤석열 정부의 신산업 정책은 성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