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기 ‘고난의 장’을 보낸 국내 증시가 4월 들어서도 여전히 힘을 못 쓰고 있다. 3일 만에 상승 마감했던 코스피지수는 27일 다시 하루 만에 고꾸라졌다. 코스피지수는 또다시 2600선을 위협했고, 코스닥 지수는 900선을 밑돌았다. 미국 증시의 폭락 영향이 컸다. 뉴욕 증시는 경기둔화 공포에 짓눌리며 다우존스(-2.38%), S&P500(-2.81%), 나스닥(-3.95%) 등 일제히 하락 마감했다.
코스피지수는 올해 들어 1월 27일 2614.49(종가기준)를 기록하며 최저를 찍었다. 시장에선 지수가 이 수치에 근접하거나 더 아래로 내려갈 수 있다는 공포감이 가득하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장중 한때 2615.50까지 내려가며 1월 최저와 불과 1포인트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언제든 코스피지수가 최저점을 경신할 수 있다는 신호다.
국내 증시는 각종 글로벌 대외불확실성에 맥을 못 추고 있다. 먼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3월 이후 기업심리도 빠르게 악화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5월 BSI(기업경기실사지수) 전망치가 97.2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달 99.1에 이어 2개월 연속 기준선 100을 밑돈 수치다. 산업 최전선에 있는 기업들의 경기악화 예상은 곧 실적 악화를 의미한다. 아울러 기업들의 펀더멘탈도 위축돼 주가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중국의 코로나19 봉쇄 조치로 글로벌 공급망 차질도 우려되고 있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이 봉쇄 조치에 나서면서 완제품을 비롯해 원료·부품을 조달하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공급 부족으로 가격이 오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물류 대란은 이미 오를 대로 오른 물가에 추가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중국발 리스크는 국내 증시도 직접 강타한다. 중국 증시는 심리적 저항선(상해종합지수 3000선)을 하향 이탈하는 극도의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 변수의 악화를 우려하는 신흥국 자금 유출 영향으로 국내 외국인 이탈도 가속화된다. 올해 들어 유가증권시장에서의 외국인 순매도 금액은 지난 26일을 기준으로 10조 원을 돌파했다. 코스피와 코스닥시장을 합하면 외국인 순매도금액은 13조 원에 육박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빅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올리는 것)도 여전히 살아 있는 불씨다. 연준의 매파적 금리인상은 소비둔화 우려를 키우고 있다. 연준은 다음 주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0.5%포인트의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이 확실시되며, 대차대조표 축소(양적긴축)에도 착수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결국, 연준의 긴축 사이클이 결국 경기 침체 가능성을 높이고, 이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증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박승진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5월 FOMC(5월 3~4일)까지 연준인사들의 발언이 제한되는 블랙아웃 기간에 진입한다”며 “블랙아웃 기간 진입 전까지 확인됐던 연준인사들의 강경한 스탠스가 잔상으로 남아 실질금리 중심의 하방 경직성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글로벌 물가 상승과 연준의 강한 긴축 기조 속에 원·달러 환율 상승도 새로운 뇌관으로 떠올랐다. 원·달러 환율은 이날 오전 달러당 1260원을 넘어섰다. 2020년 3월 이후 2년 1개월 만이다.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반영하는 달러 인덱스는 102포인트(p)를 넘었다. 시장 전문가들은 심리적 저항선이었던 달러당 1250선이 쉽게 뚫렸기 때문에 환율 단기 변동성 확대가 심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주식시장 측면에서 환율 상승은 부담 요인이다. 원·달러 환율 상승은 원화 약세를 나타내고, 이는 수급 측면에서 외국인 순매도를 자극한다. 그 과정에서 코스피도 대부분 하락한다. 또한, 외국인 순매도가 나타나는 국면에선 코스피 기준으로 대형주가 중소형주보다 상대적으로 저조한 성과를 기록한다. 환율 상승세가 지속한다면 시가총액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형주의 낙폭이 커지고, 이는 코스피 지수를 아래로 끌어당길 수 있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2000년 이후 월간 기준으로 원·달러 환율이 3% 이상 상승한 국면에서 코스피는 높은 확률로 약세를 기록한 게 확인된다”라고 전했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달러화가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 속 여타 환율에 대해 강세를 보여 원·달러 환율의 급등, 즉 원화 평가 절하 폭이 확대되면 투자심리 위축 요인이 된다”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