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예방접종을 하면서 결국 들여놨다. 당국에서 준비하라는 권고도 있었고, 워낙 이런저런 부작용에 대한 말이 많아 대비하는 차원이었다. 에피네피린, 산소 탱크와 마스크, 앰부백, 기도삽관튜브, 산소포화도 측정기 등이다. 지금껏 수천 명에게 예방주사를 놨고 다행히 큰 문제 없이 지나고 있다. 코로나 예방접종 후 15분간 앉아 있다가 가라고 하는데, 이는 아낙필락시스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사실 아낙필락시스란 말은 전문적인 의학 용어이나 하도 많이 언급되다 보니 평범한 말이 되고 말았다. 어떤 물질이 체내에 들어오면 순간적으로 격렬한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는 현상으로 창백함, 어지러움, 구토, 두통, 두드러기, 호흡곤란 등이 생긴다. 극심하면 의식소실, 호흡정지, 심장마비가 올 수 있다.
친구들과 매달 한 번 산에 간다. 다들 벌침을 좋아해 등산 중에 벌을 잡으면 평소 아팠던 부위에 벌침도 맞는다. 오래된 민간요법이다. 한의원에서 맞으면 꽤 비싸다. 그날도 벌침을 맞았는데 한 친구가 갑자기 얼굴이 하얘지며 “어? 이상하다?” 하곤 푹 쓰러졌다. 다들 괜찮을 거라고 했지만, 아는 게 병이라고 의사인 난 ‘아낙필락시스구나’ 하며 당장 해줄 게 없어 얼마나 애가 탔는지 모른다.
알레르기 반응이란 어떤 물질이 몸에 들어왔을 때 그 물질이 나와 안 맞아 해롭다고 알려주는, 그래서 우리 몸을 보호하려는 인체의 신호다. 당연히 필요하다. 그런데 아낙필락시스는 이 신호가 지나치게 격렬해 자신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파괴하는 위험한 반응이다.
여야로, 보수와 진보진영으로, 남녀로, 세대로 나뉘어 여러 정책에 대해 토론하고 이를 통해 최선의 방안을 도출해 내는 일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상대편에 대한 격렬한 거부반응은 우리 사회를 파괴하는 아낙필락시스가 아닐까 한다.
유인철 안산유소아청소년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