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 사건에서 경쟁당국(공정거래위원회)과 피심인(기업) 간의 대등한 관계를 위해 피심인 보호장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25일 전국경제인연합회는 홍대식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게 피심인 보호장치 강화 방안에 대한 연구를 의뢰한 결과 절차적 보장이 완비된 미국(연방거래위원회), EU(집행위원회)와의 비교를 통해 개선방안을 도출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미국과 EU는 경쟁당국의 조사를 ‘사전조사-정식조사’로 나누어 정식조사에서만 조사를 강제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사전조사, 정식조사 관계없이 조사에 불응하는 피심인에게 형사처벌, 이행강제금 등 법률상의 제재를 부과해 사실상 강제조사를 하고 있다.
사전조사는 공정위 심사관의 ‘사건심사 착수보고’로 시작되는 정식조사 전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조사라기보다는 ‘내사’에 가깝다. 그런데도 공정위는 사전조사에서도 정식조사와 마찬가지로 자료제출요청, 현장조사 등을 벌이고 있다.
피심인으로서는 양자에 차이가 없어 받는 조사가 사전조사인지 정식조사인지 구분하기 어렵고, 제재를 수반하는 사실상의 강제조사이므로 협조가 불가피하다.
전경련은 미국, EU처럼 우리도 사전조사와 정식조사를 명확히 구별해 전자에 대해서는 강제조사가 아닌 임의조사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미국, EU는 강제조사 전 경쟁당국의 결정을 의무화하고 있다. 강제조사의 근거가 ‘위원회 결정’이므로 해당 결정에 대한 피심인의 불복(이의신청, 법원 제소)도 허용된다.
한국은 위원회 결정 없이 조사가 이뤄진다. 위원회 결정이 없는 강제조사는 단순히 공무원의 사실행위에 불과하므로, 피심인의 불복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처럼 공정위 조사권에 대한 견제 시스템이 없다 보니 현실에서 과도한 조사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전경련은 우리나라도 불응 시 제재를 수반하는 강제조사에 대해서는 위원회 결정을 거치도록 하여 무분별한 조사를 막고, 해당 결정에 대해 이의신청, 소 제기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과 EU는 피심인이 법률자문을 받기 위해 변호사와 나눈 의사교환 내용을 비밀로 보호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공정위 조사 시 증거자료 수집 범위에 제한이 없다. 이에 공정위는 법 위반 혐의를 받는 특정 사업부서의 자료뿐 아니라 사내 공정거래팀, 법무팀 등이 법률 위반 예방 차원에서 작성한 자료까지 모두 수집해 위법 증거로 활용하고 있다.
전경련은 공정거래법 특성상 법률 리스크를 판단하는 경우, 보수적으로 접근해 위반 가능성을 크게 부각하여 자료를 작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면서 이렇게 작성된 자료를 위법 증거로 활용할 경우 기업들의 자율준수 활동은 위축될 것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변호사 자문내용, 준법활동 자료 등 법령을 준수할 목적으로 작성한 자료는 공정위 조사 대상에서 제외하고, 증거능력 또한 배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융환익 전경련 산업본부장은 “공정위 조사와 위원회 심의⸱의결은 일감몰아주기, 담합 등 엄중한 처벌로 이어지는 행위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기업에 큰 부담일 뿐 아니라, 공정위 조사 착수 자체가 해당 기업에 대한 신뢰 저하, 브랜드 가치 하락으로 이어져 매출, 주가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피심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각종 법적 장치를 보강하고, 이에 따라 명확하고 투명하게 조사를 수행하여 피심인의 예측가능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