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장 교수에게 삼성 비서실에서 연락이 왔다. 이병철 회장에게 요가를 지도해 줄 수 있느냐는 것이 요지였다. 그가 학생들에 대한 교육적 목적 이외의 활동은 곤란하다고 하자 그러면 만나기라도 해 달라고 해 이 회장의 자택으로 갔다. 지금 한남동에 있는 승지원이었다. 약속한 날 이 회장을 만났더니 두 명이 배석하고 있었다. 한 명은 비서였고, 다른 한 명은 중앙일보의 문화부장이었다. 당시 중앙일보는 삼성의 계열사였다. 개인지도는 하지 않겠다는 전제가 있었기에 다른 얘기를 나누다 이 회장은 토종꿀을 내놓으며 자기에게 좋겠냐고 물었다. 즉석에서 체질을 검사해 이 회장에게는 좋다는 결론을 내려줬다. 오링테스트 결과였다. 같은 방법을 했는데도 비서에게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에너지(기) 공급의 차이라고 설명하자 이 회장은 감탄하는 표정이었다.
며칠 후 다시 이 회장에게서 저녁 식사 초대가 있었다. 이 자리에는 국내 방직 업계의 유명 인사가 동석했는데 장 교수의 포병사령관 시절 지인이었다. 아마 주변을 물색해 장 교수와 알만한 사람을 데려온 것 같았다. 그만큼 용의주도했다. 그를 동석시킨 것은 어떻게든 장 교수를 설득해 요가를 배우려는 의지였을 것이다. 결국 장 교수는 무보수를 조건으로 개인지도를 승락했다. 그 후 비서실과 일정을 짜는 중에 이 회장의 별세 소식을 들었다. 그는 유난히 야위었던 만년의 이 회장을 떠올리며 조금 더 일찍 요가에 입문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며 아쉬워했다.
요가를 찾던 비슷한 시기, 이병철 회장은 신(神)을 찾았다. 그래서 절두산 성당의 박희봉 신부께 질문지를 보냈다. 박 신부는 이를 정의채 몬시뇰 신부가 적임자라 생각해 건넸고 이 회장과의 만남이 약속됐다. 그런데 이병철 회장이 갑작스레 별세해 만남이 무산됐다. 결국 5쪽짜리 24개의 질문만 답변도 없이 덩그러니 남겨지게 됐다. 20년도 더 지난 2010년경 답변 없는 이 질문지를 건네받은 이는 정의채 신부의 제자이자 베스트셀러 ‘무지개 원리’의 저자인 차동엽 노르베르토 신부였다. 그는 이 회장이 듣지 못한 답변을 자기가 떠맡기로 했다. 그러고 2년 후 답변의 형식으로 ‘잊혀진 질문’을 출간했다. 차 신부는 이 회장의 질문을 이병철만의 안타까움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이 회장이 고달픈 우리 인생의 흉금을 대변했다고 봤다. 그의 표현대로 하면 이 회장의 질문은 절망 앞에 선 ‘너’의 물음이며, 허무의 늪에 빠진 ‘나’의 물음이며, 고통으로 신음하는 ‘우리’의 물음이었다. 그래서 우리들이 처한 ‘삶의 자리’에서 이 절박함에 답하기로 했다. 이 회장의 질문을 빌어와 우리 모두에게 답변을 해 준 것이었다.
이 회장의 24가지 질문에는 실로 다양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첫 질문은 ‘신이 존재하면 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가?’, 마지막 질문은 ‘지구의 종말은 오는가?’였다. 하느님을 뵙고 싶은 원초적 본능과 최후의 심판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이었다. 부자가 천국 가는 것이 왜 어렵다는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기업가로서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었다. 기독교와 공산주의는 상극인데 왜 기독교인이 많은 동유럽 국가에 공산주의가 자리 잡았으며 두 집 건너 교회가 있을 정도라는 우리나라에 어째서 범죄와 시련이 많은가라는 질문도 있었다. 우리 사회와 국가에 대한 원로로서 충정이자 고언이었다.
이병철 회장은 당대에 기업을 일으켜 우리나라에서 가장 돈이 많은 부자가 됐다. 그러나 ‘잊혀진 질문’은 기업가로서의 그의 공헌에 못지않게 물질을 떠난 정신적 세계에 대한 우리의 사색과 성찰을 일깨우는 데 크게 기여한 셈이 됐다. 같은 시기에 그가 접하려 했던 요가도 수련의 본질에 있어서는 다를 바 없으니 이 또한 성사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올해 102세를 맞은 김형석 교수는 장수(長壽)와 보람이야말로 인생의 축복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이병철 회장은 생의 마지막에서 요가를 접하고 신(神)을 찾았다. 결국 이루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승에서 못다 누린 축복은 하늘나라에서나마 장경석 교수(2021년 별세)와 차동엽 신부(2019년 선종)의 도움을 받아 마음껏 누리고 계시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