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감자튀김 대란, 그것도 일시적인 공급난에 그쳤다. 하지만 기후위기와 코로나19 사태, 전쟁 등 글로벌 시장의 요인에 따라 언제 어떤 곡물이나 식재료 공급이 끊길지 모르는 상황이 됐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중증도가 약화하고 국내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면서 일상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자 지난 2년여 동안 우리를 괴롭혔던 백신 부족 걱정은 한숨 돌리게 됐다. 그런데 숨을 돌리기가 무섭게 식량 위기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이 사상 처음으로 20% 아래로 떨어져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는 통계청 보고서가 최근 나왔다. 2020년 곡물자급률은 19.3%로, 2010년(25.7%)보다 6.4%포인트나 하락했다. 전체 식량자급률 역시 45.8%로, 2010년(54.1%)보다 8.3%포인트 떨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최저 수준으로, 식량안보 낙제국을 면치 못하는 처지다. 우리나라는 쌀만 자급률 90~100% 수준으로 높을 뿐, 식성 변화로 제2의 주식이 되다시피한 밀은 자급률이 0.8%에 그쳐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옥수수, 콩도 자급률이 20~30%대다. 홍수, 가뭄, 냉해, 산불 등 전 세계적인 기후 위기가 곡물 시장 불안정에 ‘상수’로 자리 잡은 데다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공급망 붕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변수’까지 덮치면서 식량안보에 비상등이 켜진 셈이다.
국내 곡물 수입의 95%를 차지하는 밀, 콩, 옥수수 등 3대 품목은 전쟁 이후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세계 최대 밀 수출국인 러시아와 ‘유럽의 빵 바구니’로 불리는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해외 곡물 시장에서 밀 가격을 1년 전보다 2배 가까이 밀어 올렸고, 옥수수 역시 전쟁 이후 넉 달 만에 30% 이상 올랐다. 그러자 국내 밥상·외식물가가 심각한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서울지역의 칼국수 평균 가격은 1년 전보다 8.7% 올라 처음으로 8000원을 넘어섰다.
인구 5000만 명이 넘는 전 세계 국가 중에서 식량자급률이 50%를 밑도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공산품 제조로 국가 경제를 발전시킨 나라들답게 ‘식량은 부족하면 수입하면 된다’는 생각에 농업을 등한시했던 결과다. 일본은 이미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는 데 비해 아직 우리나라는 제대로 대비하고 있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일본은 일찌감치 국제협력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이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 주요 농업 국가들에 일본의 선진 농업 기술을 전수하고 해외에 농업기지를 확보해 진출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일종의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이다. 우리도 ODA에 돈을 쓰는 국가인 만큼 이런 방식으로 해외 네트워크를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10년 이상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식량안보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주 열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성과보고회에서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도 이스라엘, 스위스처럼 안보 대상인 에너지, 자원, 식량 등을 종합적으로 묶어 관리 운영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아직 코로나19 백신이 나오지 않았던 2020년 10월, 노벨 평화상은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에 돌아갔다. 스웨덴 한림원은 “의료적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 혼란에 대응하는 최고의 백신은 식량”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노벨위원회는 팬데믹이라는 재난 시기에 가장 소중한 것은 식량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일이 세계 평화를 위한 최고의 행동이라고 판단했다.
바이러스의 맹위가 다소간 잦아든 지구촌에 전쟁과 보호주의가 다시 창궐하면서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 대신 식량이라는 백신이 또다시 더 중요해진 시점이 됐다. 글로벌 공급망 불안 속에서 국민 먹거리가 달린 식량 공급망 문제를 해결해야 물가도 잡을 수 있다. ‘첫째도 민생, 둘째도 민생’이라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식량 안보 강화를 국정 과제에 포함했다고 하니 취약한 국내 식량 사정을 장기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국가적 대책을 마련하길 기대한다. hy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