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코로나19로 인한 건강과 안전에 대한 관심의 증가는 도심과 대도시보다는 전원도시와 작은 도시에 대한 선호를 키우고, 생태를 보존하고 자연과 공존하는 삶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는 개인의 자유와 사회 또는 국가의 통제라는 갈등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라는 세계관과 가치관의 충돌을 보여주었다. 마스크와 백신을 둘러싼 갈등은 개인의 자유와 자율, 공동체의 유지와 통제라는 인간사회의 본질적인 갈등을 드러나게 했다. 개인의 주권에서 공동체의 주권, 나아가 도시와 국가의 주권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지고 있다.
중앙에서 탈중앙으로, 통제에서 자율을 주창하는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추종자들은 기존의 국가체계에서 벗어나 자치 구역, 자율적인 도시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새로운 도시를 만드는 실험에 나서고 있다. 공해상에 부유물로 정착지, 기존 국가에서 벗어난 자치구역을 만들겠다는 시스테딩 연구소(Seasteading Institute)는 태국 앞바다에 작은 주거지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 주거지는 2019년 4월 태국 해군에 의해 강제로 철거되었다. 시스테딩 연구소는 실리콘밸리의 유명한 벤처 캐피털리스트인 피터 틸과 같은 거물 투자자들로부터 900만 달러의 투자를 받아 여러 지역에 자치도시를 설립하는 프로노모스 캐피털로 통합되어 계속해서 파나마, 가나, 나이지리아 및 마샬군도 등의 개도국 공터에 차터도시(헌장도시)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차터도시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 황무지에서 새롭게 도시가 개척된 미국 캘리포니아나 분권의 역사가 깊은 독일 같은 지역에서 존재해왔다. 도시의 의회에서 자치 헌장을 제정하면 국가나 지방정부의 일반법보다 이 헌장이 우선하게 된다. 헌장은 지방자치의 조례보다 법에 가까워서 일반법의 조항과 배치되는 조항을 채택할 수도 있다.
최근에 차터도시는 실리콘밸리의 기업인, 벤처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구글이 토론토에서 시도하였지만 실패한 스마트시티 프로젝트에 대한 반성에서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기존 주민들이 자신들의 데이터, 개인정보를 기업에 제공하고 공유하는 것에 대해 거부하였기 때문에 구글은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없었다. 그래서 새롭게 차터도시 개념을 도입하여 혁신을 촉진할 수 있는 지역을 새롭게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다. 성공한 벤처 기업인들이 아프리카에서 디지털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자유무역지대를 만드는 노력을 하고 있다. 나이지리아의 탤런트 시티는 자체 규정에 동의하는 재능있는 사람들을 모아 차터도시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추진하는 네옴 시티는 중앙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독립적인 사법·행정 체계를 갖추어 ‘국가 안의 국가’처럼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다양한 입장과 이해관계를 가진 기존 도시민들의 합의를 이끌어 내는 대신에 차터도시는 헌장에 동의하는 시민들을 모으는 방식이다. 창업을 하는 것과 같이 도시의 설립 원칙과 운영 규칙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도시를 창업하는 방식이다. 도시의 대표가 선출되고 시민들의 합의에 의하여 헌장을 수정하면서 도시의 정체성을 살리며 발전해 나가게 된다.
좋은 거버넌스가 번영을 가져온다. 국가 차원에서의 거버넌스 실험은 더디고 리스크가 크다. 그러나 도시 차원에서는 많은 새로운 실험을 할 수 있다. 새롭게 만들고자 하는 도시의 헌장을 미리 제시하고 동의하는 시민들이 만드는 신도시를 시도해 볼 때가 되었다. 자체 헌장을 가진 스마트 건강도시, 탄소제로 도시, 드론 도시, 자율주행 도시, 인공지능 도시 등 다양한 도시의 창업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