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원자재·환율 등 가격 상승분에 따라 납품가격이 반영돼야 하지만 현실은 그러지 못하다. 제조 중소기업 대부분이 중간재를 생산해 대기업 등에 납품하는 구조여서 단가 반영이 쉽지 않아서다. 중소기업계는 납품단가의 제값을 받는 제도인 ‘납품단가연동제’ 도입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납품단가연동제는 하도급 계약 기간에 원부자재 가격이 변동될 경우 이를 반영해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에 납품단가를 인상해주는 제도를 말한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하면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자 이 제도가 논의되기 시작했지만, 원청업체인 대기업의 반발과 개별 중소기업들의 산업 이탈이 야기되면서 ‘조정협의’만 생겨났다. 연동제는 현재까지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중소기업계는 현재 운영 중인 납품단가 조정협의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연동제 법제화를 주장해왔다. 납품단가 조정협의제는 원자재 등의 가격이 크게 오른 경우 중소기업이 원청에 납품단가 조정을 신청하게 한 제도다. 하지만 조정을 신청한 중소기업이 원청인 대기업에 ‘찍히는’ 결과를 낳을 수 있으므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21년 중소기업중앙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67.5%는 중앙회를 통해 조정 협의를 할 의향이 없다고 답했다.
중소기업들의 피해가 가속화되자 정부는 올해 상반기 중 납품단가연동제를 시범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운 지난 2월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를 열고 “표준계약서 등을 통한 납품단가 연동제를 상반기에 시범 운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가 공언했던 시범실시는 대선 정국을 맞으면서 자연스레 다음 정부의 몫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후보 시절 중소기업 공약에서 납품단가연동제 도입 추진을 약속했다. 하지만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에선 말이 달라졌다. 인수위는 원자재 가격 인상이 소비자 부담으로 직결될 가능성이 크고 법제화를 할 때 연동할 원자재 품목과 기준을 정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밝혔다. 결국 ‘다람쥐 쳇바퀴’ 돌듯 원점으로 돌아왔다. 인수위는 납품단가 연동제 법제화엔 선을 그은 대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조정협의 실효성을 강화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중소기업계는 납품단가연동제의 빠른 정착 등 지원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추문갑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양극화가 커지는 상황에서 다른 부분도 아니고 원자재 가격 인상분만큼만 반영이 필요한데 반영이 안 되고 있다”며 “양극화 해소를 위해 오는 11일에 기자회견을 열고 새 정부에 강력히 건의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