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도 지금은 경제위기 시대이기 때문에 서민경제를 추스르고 기업활동을 다독거릴 경제총리를 내세운 것은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총리의 리더십 아래에서 보조를 맞출 장관들과 그 부서들은 한동안 문재인 정부가 5년간 했던 사업들을 평가하고 계속·폐지·복원을 결정하느라 부산할 것이다. 이것은 대부분 과거를 만지는 일이다. 여기에 함몰하면 자칫 윤석열의 ‘새 정치, 새 사람’ 구호는 빛을 잃을 수 있다.
지금은 참으로 엄중한 시기다. 제4차 산업혁명의 심화, 종착역 없는 코로나19 팬데믹, 기후변화 등이 한꺼번에 몰려온 이른바 문명적 패러다임 대전환기다. 여기에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가세함으로써 세계질서 붕괴와 함께 세계경제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글로벌 위기의 요인들이 국내 경제에 치명적으로 다가오고 있는 이때에 국가가 방향을 잃거나 현재에 몰두하면 미래가 어두워진다. 새 정부는 과거 외환위기 때보다 훨씬 어려운 환경에서 출발한다. 문제가 한층 복잡하고 폭넓어졌을 뿐 아니라 긴급해졌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새 정부가 ‘과학기술선도국가’를 주창하며 과학기술부총리제를 들고 나온 것은 위기 속에도 미래를 챙긴다는 희망을 발견케 한다. 지금은 누가 뭐라 해도 과학기술의 시대다. 제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5G(최첨단 통신망), 블록체인 등을 망라한 메타버스라는 초광역 사이버 스페이스를 만들며 실제 경제(real economy)를 견인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빛의 속도(wharp speed)로 개발된 백신으로 제압되어 가는 모습이다. 수년이 걸리는 신약 개발이 7, 8개월에 이뤄지는 바이오의료 기술혁명이 있었던 덕분이다. 기후위기에는 100년 만의 전기차(EV) 시대로의 전환이 유력한 방파제가 될 참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전력은 서방측의 SNS(사회관계망) 빅테크에 무참하게 꺾이고 있다. 기술과 경제와 안보는 국가를 지탱하는 세 개의 받침대다.
때문에 과학기술계와 주요 미디어들은 과학기술부총리에 어떤 인재를 앉힐 것인가가 새 정부의 성패를 가늠하는 중요한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들의 조언을 정리하면 과기부총리는 우선 과학기술계가 인정하는 실력파여야 한다. 연구실의 영역을 넘어 과학기술 정책을 두루 꿰고 있는 인재를 뜻한다. 여태까지 과기부장관 인사는 깜짝쇼가 다반사였다. 명실공히 실패한 인사의 연속이었다. ‘과학기술 천대론’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다행히 이번 인수위에는 역대 정부에서 과학기술 관련 차관(급)을 지낸 인재들이 여러 명 들어 있다. 모두들 검증받은 실력파들이다. 혹 외부에서 추천이 들어오는 인재들도 있을 것이다. 올바른 인사, 투명한 인사가 되려면 충분한 검증 자료를 갖고 윤석열 차기 대통령이 직접 리더십, 행정력, 책임감 등을 파악하는 면접을 행하는 게 국민들과 전문가 집단에 강력한 메시지를 줄 수 있다. ‘윤석열=과학기술 대통령’이라는 새로운 등식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약 1년 반 전 당선 수락 첫 연설에서 새 정부의 모든 정책의 선두(forefront)에는 과학기술이 있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과학적 증거 기반의 정책 결정을 정부 운영의 모토로 삼은 것이다. 그는 과학계의 의견을 수렴한 뒤 백악관 과학기술정책국(OSTP) 국장 후보에게 국가가 원하는 임무를 장문의 글로 전달했다. 국장을 장관급을 격상시켜 내각회의(캐비닛)에 참석토록 했다. 바이든의 과학기술선도국가론도 참고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