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하루키 소설 ‘노르웨이의 숲’의 매혹적인 첫 문장에 빠져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1980년대 저항문학에 익숙했던 우리 세대는 감히 하루키를 대놓고 좋아한다 말하지 못했다. ‘소확행’과 미니멀리즘, 그리고 자신의 감정에 지극히 충실한 하루키의 어법은 거대 담론을 지향하고 실천을 동반한 문학만이 진정한 예술이라 믿었던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투쟁의 시대가 끝난 후 비로소 나는 하루키의 작품을 빠지지 않고 거의 다 읽을 수 있었다.
일본에서 봉준호 감독급으로 인정받고 있는 신예 하마쿠치 류스케 감독은 영상으로 옮기기 어렵다는 하루키의 소설을 모티브로 영화를 만들었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하루키의 단편을 모은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 수록된 동명의 단편소설을 각색한 영화다.(다른 단편들의 내용도 섞여 있다.)
배우 겸 연출가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는 아내의 외도 현장을 우연히 목격한다. 그러나 남편은 지금의 관계가 깨질까 봐 추궁하지 못한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아내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2년이 흐른 후 영화의 무대는 히로시마로 옮겨간다. 지방 문화단체에서 기획한 연극제의 연출직을 제안받은 가후쿠는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를 다국적인 대사로 하는 연극을 준비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주최 측이 추천한 운전사 미사키(미우라 도코)를 만나고 두 사람은 억눌렸던 아픔과 상처를 서로 치유해 간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죄의식과 상실감을 비로소 마주하게 되는 두 사람은 결국 타인과의 소통이 서서히 가능해지면서 상처는 회복된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먼저 봐야 하는 것처럼, 스스로의 감정을 알기 위해서는 타인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는 사실이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오래 가슴에 남는다.
3시간이 넘는 동안 내내 우울함에 침잠해 있지만 영화가 끝난 후 기분 좋은 먹먹함이 우울을 몰아낸다. 이 원고를 넘길 때, 올해 아카데미 외국장편영화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축하할 일이다.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