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추진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급망 실사가 법제화되면 반도체 등 주요 업종이 영향권에 들어가 110여 개 수출기업이 ‘고위험군’에 속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에 정부는 수출기업의 선제 대응 지원을 위해 ESG 모의평가와 컨설팅,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ESG 리스크 관리 시범사업에 본격 착수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31일 한국무역보험공사에서 경제단체, 수출 관련 공공기관 등과 함께 수출 중소·중견기업 ESG 지원 시범사업 착수 회의를 열고 EU 공급망 실사 지침의 주요 내용과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유럽에서는 ESG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독일, 네덜란드 등이 환경, 인권 등에 대한 공급망 실사를 이미 법제화했다. 특히 지난달 EU의 공급망 실사 지침 최종안이 발표됨에 따라 수출기업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EU 공급망 실사 지침안이 추후 이사회와 의회에서 승인되면 EU 회원국은 1∼2년 내에 관련 법률을 제·개정해 공급망 실사를 의무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EU의 공급망 실사 지침은 기업에 자회사·협력사 등 자사 공급망을 대상으로 한 실사 정책 마련과 잠재적 영향 식별, 진단·실사, 부정적 영향 개선 등의 의무 부과 내용을 골자로 한다. 매출액과 근로자 수 등을 기준으로 해 1그룹(정규 실사)과 2그룹(약식 실사)으로 나눠 역내·외 기업에 적용한다.
한국생산성본부는 EU, 독일 등의 공급망 실사가 발효되면 자동차 부품, 반도체, 제약·바이오, 화장품 산업 등이 가장 먼저 영향권에 들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면서 관련된 주요 기업들과 함께 사전 대응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무역보험공사는 수출보험을 이용하는 대(對)EU 수출 중소·중견기업 중 EU 공급망 실사 지침의 ‘고위험 섹터’에 해당해 잠재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수출기업을 110여 개로 보고 있다. EU 공급망 실시 지침의 고위험 섹터에는 섬유, 농업, 광물 자원 채굴 산업의 제조 및 도매무역 등이 포함된다.
무역협회는 노동·환경 관련 생산 비용 상승 등으로 수출기업의 경쟁력 약화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다만 ESG 실사 준수가 가능한 국가의 기업을 중심으로 EU 공급망이 재편될 경우 사전 대응에 들어간 우리 기업에 기회요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는 수출기업의 공급망 ESG 리스크 관리 강화를 위해 업종별로 차별화된 지원 방안을 마련하기로 하고 시범사업에 나선다.
EU, 미국 등 주요국 및 공급망 실사를 도입한 글로벌 기업의 중소·중견 협력사 50∼100개사를 선정해 ESG 수준 모의평가와 공급망 컨설팅을 제공할 방침이다. 모의평가 우수기업엔 수출보험 우대, 해외 마케팅·전시회 참여, 판로 개척 등 수출 관련 인센티브도 부여한다.
정부는 시범사업을 추후 산업단지 등 내수기업으로도 확대할 계획이다. 사업 진행 결과를 바탕으로 모의평가 문항을 정립하고 업종별 세부 대응 방안을 마련한다.
최남호 산업부 산업정책관은 “ESG 공급망 실사는 국가뿐 아니라 기업이 주도하는 새로운 형태의 수출 장벽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수출기업의 영향이 최소화되도록 업종별 대응 가이던스를 마련하고 시범사업 대상 확대를 위해 내년에 정식 사업으로 추진하는 등 관련 예산 확보에도 노력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