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대통령의 비극, 이제 끝낼 때 됐다

입력 2022-03-3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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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창 국장대우 정치경제부장

대통령 선거가 끝났지만 끝난 게 아니다. 진영대결은 더 격화하고 있다. 싸움을 업으로 하는 정치권만의 얘기가 아니다. 국민도 반으로 갈라졌다. 대선 패배자는 승복했지만 그 지지자들은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른바 심리적 불복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취임도 안 한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탄핵을 입에 담는 사람까지 있다.

대선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역사는 반복된다. 선거전의 대립 구도는 승패가 결정된 뒤에도 그대로 남기 일쑤였다. 패한 후보를 지지했던 국민은 패배를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승자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 비토 기류가 강하다. 더욱이 이번 대선은 불과 0.7%포인트 차의 초박빙 승부였다. 긴 탄식과 좌절감은 그런 심리를 부추겼다. 이런 국민이 적지 않다. 과거에도 진보진영은 보수정권에, 보수진영은 진보정권에 그랬다. 35% 정도 되는 비토그룹은 정권의 반대편에 견고한 성을 쌓는다. 이번은 더 심각하다.

이런 불복심리에 기름을 부은 건 정치권이다. 대선이 끝나자마자 신구 권력이 정면충돌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과 임기말 인사로 티격태격하더니 대통령 집무실 용산이전을 놓고 날카롭게 대립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의 만남에 19일이나 걸렸다. 역대 최장 기록이다. 통상 신구 권력이 협력하는 정권교체기의 허니문도 사라졌다. 가까스로 극단적인 갈등은 봉합했지만 정권 인수작업은 여전히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신구 권력의 충돌은 낙담했던 지지자들이 다시 똘똘 뭉치는 계기가 됐다. 최근 여론조사가 잘 보여준다. 리얼미터가 미디어헤럴드의 의뢰로 21∼25일 전국 18세 이상 251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응답자의 46%가 윤 당선인이 국정 수행을 ‘잘할 것’이라고 답했다. ‘못할 것’이라는 응답은 49.6%였다. 역대 대통령의 당선 직후 지지율 80%의 절반 수준으로 대선 득표율보다도 낮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평가는 46.7%였다. 문 대통령 지지율과 윤 당선인에 대한 부정 여론이 비슷하다. 진보진영 국민 상당수가 윤 당선인의 반대편에 견고한 성을 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윤 당선인의 대선 득표율은 48.6%다. 투표를 안 한 사람까지 포함한 전체 유권자로 환산하면 37.1%다. 투표 불참 지지자를 포함해도 40%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35%의 반대세력이 비토그룹을 형성하면 국정동력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임기 초반 높은 지지율로 개혁과제를 밀어붙이는 대통령제의 통상 공식도 깨질 것 같다. 당선의 즐거움도 잠시 뿐 가시밭길이 기다린다. 윤 당선인은 취임도 하기 전에 이미 쓴맛을 보고 있다.

비단 윤 당선인의 문제만이 아니다. 한국 대통령제의 구조적 한계다. 역대 대통령도 비슷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선거에서 51.6%를 득표했지만 전체 유권자 환산 득표율은 38.9%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31.6%였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30.5%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34.3%였다. 애당초 모든 정권이 소수정권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낮은 득표율에 반대진영의 심리적 불복이 더해지면 대통령은 출구 찾기가 어렵다. “대통령 못 해 먹겠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을 것이다.

역대 대통령의 길은 순탄치 못했다. 2년 차에 지지율이 떨어져 3년 차부터 레임덕을 걱정하는 처지에 몰렸고 말년엔 식물대통령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다른 대통령에 비해 지지율이 높고 심각한 레임덕도 겪지 않았지만 철저하게 지지층에 기댄 국정운영의 산물이었다. 임기 내내 지지층만 보고 달렸다. 국민 분열이 고착화했다.

역대 대통령의 끝도 좋지 못했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식이 구속되는 아픔을 겪었고,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구속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가족 비리 의혹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같은 대통령의 불행은 개인의 문제일 수만은 없다. 5년 단임의 제왕적 대통령제가 가져온 비극이다. 전부 아니면 전무의 게임이니 타협의 여지가 없다. 대선에 모든 걸 걸었다. 네거티브에 포퓰리즘은 기본이다. 흑색선전까지 난무했다. 비전 경쟁은 애당초 기대할 수 없다. 대선전이 최선 또는 차선의 선택이 아닌 차악의 게임으로 전락한 이유다. 이는 극단적인 대결정치를 불렀다. 정치는 실종됐다. 심각한 국민분열을 불렀다. 사회 갈등을 해소해 국민을 편안케 하기는커녕 국민이 정부를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웃으면서 청와대를 떠난 대통령이 없었다. 국민 지지로 대통령이 됐지만 끝이 좋지 못했다. 대통령의 불행은 국민의 불행이자 국가의 불행이다. 이런 비극적인 게임을 언제까지 계속할 건가. 이젠 멈춰야 한다. 내각제나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로의 개헌을 심각하게 검토할 때가 됐다. lee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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