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거래소 간 트래블룰(코인판 금융실명제) 솔루션 연동이 요원해진 가운데, 투자자들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각기 다른 솔루션을 채택한 거래소 간 가상자산 전송이 불가능해서다.
지난 25일 시행된 트래블룰에 대해 금융당국의 관리 감독이 미진했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29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사실상 반쪽짜리 트래블룰이 시행되고 있다. 업비트와 빗썸ㆍ코인원ㆍ코빗 간 트래블룰 솔루션 연동이 지연되며 해당 업체 간 가상자산 전송이 불가능해서다. 거래소 간 가상자산을 옮기며 차익을 실현하는 투자자들이 솔루션 연동 가능 예상시기인 1개월 후까지 이와 같은 투자를 하지 못하는 셈이다.
현재 업계의 트래블룰 솔루션은 업비트의 베리파이바스프(VV)와 빗썸ㆍ코인원ㆍ코빗의 합작사 코드(CODE)로 양분된 상태다. 업비트는 지난 1월 가상자산 사업자들과 트래블룰 워킹그룹을 운영하고 있었고, 코드는 그간 코다의 R3 메인넷을 활용해 블록체인 버전의 트래블룰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었다. 코드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빗썸·코인원·코빗 간 연동은 완료됐고 테스트까지 끝난 상태로, VV와의 연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해당 솔루션의 이질성은 블록체인 기술 채택 여부인 것으로 알려졌다. VV는 블록체인을 채택하지 않았고, 코드의 솔루션은 블록체인에 기반해 조정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트래블룰 시행 시기인 3월 25일에 가까워지며 코드는 그동안 개발해왔던 블록체인 시스템을 멈추고 비(非)블록체인 버전을 우선 도입해 3월 초부터 업비트의 블록체인 자회사 람다256와 연동부터 시키는 쪽으로 급선회했다.
메시지 포맷과 가상자산사업자(VASP) 주소확인 방식 등 트래블룰 시스템의 중요 사항들을 모두 람다256의 VV에 맞춰 개발을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코드 관계자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큰 부분의 변경 개발을 진행한 탓에 테스트를 끝내 마무리 짓지 못하며 연동을 미루게 됐다"라며 "예정된 시점까지 트래블룰이 연동되지 않아 국내 거래소끼리 송금을 못 하는 불편이 발생한다면, 고객들은 시장 점유율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업비트를 주로 이용하고, 업계의 균형 있는 성장에 위해를 끼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솔루션 연동의 난이도 자체가 높지 않다는 지적을 제기하기도 했다. VV와 코드 연동의 지연 이유는 코드 개발 자체로, 블록체인과 비블록체인 여부가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업비트 관계자는 "연동 지연으로 업비트가 얻을 이익이 없다"라며 "오히려 많은 업비트 이용자들이 불편할 가능성만 높아, 소극적일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따.
업계에서는 금융당국의 노력이 미진했다는 비판 또한 이어졌다. 금융정보분석원(FIU)이 트래블룰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고 누차 강조했지만, 이행 시 필수적으로 담아야 하는 내용이나 관련 조처에 대해 전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관련 부서에서 트래블룰 이행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반복했던 것으로 안다"라며 "안팎으로 업계 간 이견을 조정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있었는데 이번에 나타난 것으로, 적극적인 조처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전 세계적으로 트래블룰을 처음 시행한다는 자부심도 있었고, 트래블룰 시스템이 자리 잡으면 동남아 국가 등에 수출하고 홍보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었다"라며 "준비 과정에서 미진한 부분이 있지 않았겠나"라고 부연했다.
중소형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는 "트래블룰을 준수해야 한다고 누차 얘기했지만, 관련한 가이드라인이나 지침은 한 줄도 없었다"라며 "준수하지 않으면 가상자산 사업자 지위를 박탈할 수 있다고 경고했는데 어떤 내용을 따라야 하는지 사실상 미지수인 셈"이라고 토로했다.
거래소가 안고 있는 각기 다른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현재 가상자산 거래소와 실명계좌 제휴를 맺고 있는 은행이 다른 만큼 트래블룰 이행과 관련한 요구사항이 각기 다르다는 것이다. 실제 업비트의 경우 해외거래소 지갑 등록 방식에 제한이 없지만, 빗썸과 코빗은 지갑 주소 및 신분증을 등록해야 하고 코인원은 지갑주소를 등록해야 한다.
업계 전문가는 "가이드라인 없이 트래블룰이라는 규제를 이행하게 하고, 관련 이견을 조정하지 못하면 결국 시장지배력이 큰 업체에만 플러스 알파가 될 수 있다"라며 "금융당국이 독점적 시장 지위 강화 행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