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 원칙)를 강화한 뒤 주총 안건에서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는 비율이 크게 늘어났지만, 실제로 부결까지 이어진 경우는 1%도 채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28일 이투데이 취재를 종합하면 국민연금은 이달 25일까지 열린 46개 기업의 정기 주총에서 403개 안건 중 68개 안건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다. 내용별로 보면 △이사 및 감사위원 선임(38건) △이사 보수한도액 승인(23건) △정관 일부 변경(3건) 등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 안건 중 부결로 이어진 경우는 4건에 불과했다. 의결권을 행사한 전체 안건 중 1%에도 못 미친다.
국민연금은 23일 한진칼 주총에서 이사의 자격 관련 정관 변경(제5-2호 의안)에 대해 과도한 자격 제한 가능성 등을 이유로 들어 반대했고, 해당 의안은 부결됐다.
25일 열린 금호석유화학 주총에서는 현금 배당 승인(제1-2-2호), 이사 선임(제2-3호, 제2-4호) 등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다.
같은 날 KB금융 주총에서도 김영수 사외이사 선임을 반대했다. 국민연금은 “중요한 지분·거래 관계 등에 있는 회사의 상근임직원에 해당하는 등 이해관계로 인해 반대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진 의안들이 모두 주주 제안이라는 점이다.
한진칼에서 부결된 안건은 주요 주주인 그레이스홀딩스가, 금호석유화학은 경영권 분쟁의 한 축인 박철완 전 상무가 제안한 안건이었다. KB금융의 김영수 사외이사 후보 역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B국민은행지부 등에 의한 주주 제안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은 2018년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이후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지만, 반대표를 행사한 안건이 실제 부결된 경우는 드물다는 문제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김규식 변호사(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는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권리를 행사했을 때 다른 주주들이 따르지 않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며 “그런데 과연 국민연금이 중요한 이슈의 결정권을 쥐고 있을 때 반대표를 행사한 적이 있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국민연금이 더욱 적극적인 주주활동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경영진이 위법 행위를 하거나 주주 권리를 침해한 경우 주총 투표에 그치지 않고 국민연금의 주주대표소송까지 갈 수 있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고 말했다.
원안을 부결시킬 만큼의 지분을 갖고 있지 않은 국민연금이 실제 주주들의 의사와 다른 결정을 내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최준선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국민연금의 의결권이 관철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건 일반 주주들 생각과도 동떨어졌다는 것”이라며 “형식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건 오히려 기업 성장을 방해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