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신임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에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국장을 지명하면서 윤석열 당선인과 또 갈등을 빚었다. 청와대는 이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당선인측의 의견을 들었다”고 했지만 윤 당선인측은 “협의하거나 추천한 바 없다”고 즉각 부인하고 나섰다. 가뜩이나 신구 권력간 갈등의 ‘뇌관’으로 꼽혔던 임기 말 공공기관 인사권을 두고 진실 공방까지 벌어면서 양측의 갈등이 더욱 심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문 대통령은 이날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뒤를 이을 신임 총재 후보로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을 지명했다. 지난 2018년 연임된 이 총재는 이달 말 임기가 만료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은 총재 후보자 지명 배경에 대해 “한은 총재는 당연직 금융통화위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돼 있다”며 “어느 정부가 지명했느냐와 관계없이 이달 31일 임기 만료가 도래해 임명 절차 등을 고려할 때 후임 인선작업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한은 총재 인사를 발표할 때만해도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갈등이 완화될 수 있는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인사발표가 점심시간인 12시를 넘어선 시간 나왔고, 당선인측 의견을 반영했다고 한 만큼 양측이 대화의 물꼬를 터 극적인 합의에 이른 뒤 ‘긴급 발표’를 하게 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었다. 특히 이창용 후보자는 청와대와 당선인측이 일정수준의 공감대를 가진 인물로 알려졌다는 점에서 청와대가 화해의 제스처를 보낸 것이라는 분석까지 제기됐다. 이 후보자는 이명박(MB) 정부 출범 당시 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인수위원과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던 인물이다.이 때문에 이미 인수위에 ‘MB맨’을 여럿 등용한 윤 당선인 측에서 문제 삼지 않을 인물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인사 발표가 있으지 불과 몇 분 뒤 윤 당선인 측이 입장문을 통해 “한국은행 총재 인사 관련해 청와대와 협의하거나 추천한 바 없다”고 부인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윤 당선인측 말대로라면 청와대의 한은 총재 인사는 오히려 점심시간을 틈 탄 ‘기습발표’였던 셈이기 때문이다.
한은 총재 인선이 양측 간 ‘진실 공방’ 양상으로 흐르면서 갈등은 더욱 격화될 위험이 높아졌다. 앞으로 첫 회동 무산의 핵심 원인이었던 감사원 감사위원 인사가 예정돼있다는 점에서 신·구 권력 간 추가 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