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중증환자와 사망자가 늘어남에 따라 정부가 두 번째 먹는 코로나 치료제 도입을 결정했다. 정부는 11일 국가감염병임상위원회를 열고 코로나 먹는 치료제인 미국 엠에스디(MSD)의 라게브리오(성분 몰누피라비르) 10만명 분의 국내 도입을 결정했다고 최근 밝혔다.
그러나 허가 당국인 식품의약품안전처 승인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소 급하게 도입을 결정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이투데이 취재 결과 전문가들은 효과(유효성)와 부작용(안전성)에 대한 우려로 제한적인 사용이 필요하고 기존 치료제인 팍스로비드를 복용할 수 없는 고위험 환자군이 대상인 만큼 허가 당국의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라게브리오는 보건당국의 계획에 따르면 3월말 10만명분이 국내에 도입돼 환자 치료에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조건은 식약처의 긴급사용승인이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지난 21일 정례브리핑에서 “작년 11월 긴급사용승인에 대한 검토 요청을 식약처에 한 바 있다. 식약처에서 지속적으로 긴급사용승인 관련 정보를 분석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라게브리오 투약 대상군은 기존 치료제인 화이자의 팍스로비드 복용이 불가능한 경우다. 질병청은 현재 코로나19 치료제로 사용되는 팍스로비드의 경우 신장이나 간 장애가 있는 경우 처방이 불가하고, 병용금기 약물을 복용하는 환자에도 사용할 수 없는 만큼 고위험군의 또 다른 치료옵션으로 판단하고 있다.
정 청장은 “먹는 치료제의 조기 도입과 (팍스로비드) 추가 구매 등을 통해 고령층 등 고위험군에게 적기에 치료제를 투약하고 중증화를 예방해 의료체계 부담을 완화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팍스로비드 처방이 어려운 고위험군들에게 처방이 될 수 있게끔 신속하게 도입을 식약처와 협의해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의료 전문가들은 라게브리오의 경우 안전성과 효과성에서는 장단점이 있어 제한적으로 사용된다는 공통된 의견을 보였다. 따라서 치료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진 팍스로비드 공급량을 더 늘려 고위험환자의 입원·사망을 낮추고 라게브리오 도입은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상엽 KMI한국의학연구소 상임연구위원(감염내과 전문의)은 안전성과 유효성을 이유로 라게브리오 도입에 회의적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이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신 위원은 우선 라게브리오의 효과에 부정적 견해를 제시했다. 그는 “라게브리오의 임상결과 보고에서 코로나19 환자의 입원 예방효과가 50%였다. 그런데 최종보고에서는 30%까지 뚝 떨여졌다”며 “이는 임상연구 중간까지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다가 후반으로 가면서 위약보다도 오히려 더 효과가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 위원은 “어떤 약이 사용되기 위해서는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돼야 한다. 부작용도 문제가 될 수 있지만 효과가 더 문제”라며 “별 효과도 없는데 부작용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도 효과에 대한 내용을 검토중이다. 정 청장은 21일 브리핑에서 “작년 12월 미국 식품의약국(FDA) 긴급사용승인 당시 입원 또는 사망의 비율을 30% 정도로 감소시켜 주는 것으로 보고한 바 있다. 이외 세계보건기구(WHO)의 치료 가이드라인에서는 입원을 46% 감소시킨다”며 관련 내용을 검토했다고 설명했다.
WHO는 이달 3일 라게브리오에 대한 코로나19 치료가이드라인 개정판을 공개했다. WHO는 코로나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환자, 면역결핍환자, 고혈압이나 중증 당뇨병 등 고위험군 만성질환자를 포함한 입원 위험이 매우 높은 고위험 환자군에 대해 라게브리오 사용을 조건부로 권고했다. 다만 WHO는 젊고 건강한 코로나19 환자나 임산부, 수유부 등의 경우 안전성을 이유로 투여해서는 안된다고 조건을 붙였다.
부작용 등 안전성 문제도 있다. 신 위원은 라게브리오 기전 자체가 DNA 복제 과정에서 작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바이러스 복제를 억제하는 부분도 있지만, 우리 몸안 세포의 DNA에 끼어들면 임산부나 소아는 물론 남성의 정자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론적으로 기형아 출산 우려도 있다. FDA 승인 과정에서도 이러한 안전성 이슈로 남성은 라게브리오 복용 후 3개월간 피임을 해야한다는 의견도 나왔다”고 설명했다.
서울 지역의 한 개원의사는 “라게브리오가 아주 제한적으로 고위험군에 사용되는 것은 맞다. 다만 부작용이 큰 만큼 충분한 자료 검토를 통해 사용 승인을 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며 “팍스로비드 공급을 더 늘리고 다른 치료 대안을 더 고민해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신 위원도 “식약처가 라게브리오에 대한 안전성·유효성에 대해 충분히 판단해야 한다”며 “높은 비용을 들여서 환자들에게 처방하는 것이 비용효과적일지, 안전할지 장담하기 어렵다. 긴급사용승인이 되더라도 (제한된 환자군을 대상으로) 사용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도입이 결정돼 승인을 앞둔 라게브리오는 MSD가 6건의 전임상 연구를 통해 오미크론 변이에 대한 항바이러스 효과를 입증한 바 있다. 한국MSD 측은 MOVe-OUT 3상 임상연구를 통해 코로나19로 인한 입원 또는 사망 위험 감소 효과가 입증됐다고 설명했다.
임상연구 분석 결과에 따르면 위약군은 환자의 9.7%가 입원 또는 사망한 반면 라게브리오 투여군은 6.8%로 감소해 3.0% 절대위험감소율(ARR)을 보였다. 사망은 위약군에서 9건, 라게브리오 투여군에서 1건이 보고돼 사망 상대 위험감소는 89%였다.
해외에서도 긴급사용승인 후 처방이 이뤄지고 있다. 한국MSD에 따르면 현재 미국과 영국, 일본, 호주 등 13개 국가에서 사용이 승인됐다. 영국의 경우 지난해 11월 조건부 허가 승인됐고, 미국에서도 지난해 12월 긴급사용승인(EUA)이 이뤄졌다. 처방 현황과 관련 MSD에 따르면 영국 내에서 약 7300명 이상의 환자가 복용한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의 경우 약 122만명 이상 환자가 라게브리오를 처방 받아 복용했으며, 호주는 1일(현지시간) 65세 이상의 코로나19 환자에 대한 보험이 적용됐다.
국내 투약 기준 관련 정 청장은 21일 브리핑에서 “5일 이내에 투약을 하는 것으로 돼 있다. 팍스로비드나 라게브리오 모두 다 투약시기가 5일 이내이기 때문에 조기진단이 중요하다. 고위험군들은 조기진단과 조기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