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의 고전은 다양한 시사점을 준다. 중요한 것만 나열하자면 글로벌 식량 위기, 경제성장 정체, 온난화 가속, 세계적인 국방비 지출 증가, 국제질서 변화, 러시아 내 정치적 혼란, 열린 미래예측(Foresight) 중요성 부각 등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전 세계 식량 공급에 차질을 빚게 할 것이다. 2019년 기준 전 세계 밀 생산량의 약 10%와 4%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각각 차지한다. 우크라이나 경작지 파괴와 농기구 등의 파손으로 2022년 밀 생산량이 예전과 같지 못할 것이며, 러시아의 경우 경제 제재로 원활한 밀 수출이 어려워질 것이다. 비료의 원료인 요소, 칼륨의 전 세계 생산량 중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점유율은 30%, 26%에 달한다. 러시아는 인산염과 질산 계열 비료 주요 생산국의 하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쌀과 콩의 주요 생산국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식량 위기에까지 이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그러나 밀과 비료 가격의 상승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와 선진국의 경우 밥상 물가가 오르는 것에 불과할 것이나, 저개발국의 경우에는 식량 위기가 현실이 될 것이다.
글로벌 경제성장도 둔화될 것이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로 인한 글로벌 가치사슬의 단절, 화석연료 가격 상승은 현재 진행형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종전협상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대러시아 경제제재를 풀어달라고 요구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푸틴에 대한 신뢰도가 낮고, 러시아의 경우 중국과 인도라는 탈출구가 있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미국의 입장에서 러시아의 고전은 중국을 압박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글로벌 경제성장 둔화는 코로나 극복을 통한 글로벌 경제의 정상화에 찬물을 끼얹게 될 것이다.
기후변화 대응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이다. 러시아의 천연가스 수출에 제재가 가해질 것이다. 유럽은 러시아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러시아의 천연가스 사용을 줄일 것이다. 전 세계적인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노력은 단기적으로 멈출 위험이 있다. 미래를 위한 절실한 변화에 대한 노력이 현재의 이해관계로 인해 단절되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될 것이다. 기후변화는 계획했던 것보다 억제되지 않을 것이다. 경제성장 둔화는 화석연료 사용 억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각국의 국방력 투자 증가도 시작되었다. 유럽은 벌써부터 국방비 지출을 늘렸으며, 중국은 2022년 국방비를 전년에 비해 7.1% 증액시켰다. 러시아의 고전은 러시아와 중국에 군사전략 및 군비의 재정비를 하게 할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예상 밖 선전에 기대어 많은 국가가 국방비 지출을 늘릴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닐 것으로 보인다. 국방비 지출 증대는 국방산업에 긍정적 효과를 보일 것이나, 전반적으로 경제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며 사회복지 예산도 줄일 위험이 있다.
러시아와 중국의 연대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다수의 전문가는 신냉전체제가 도래할 것으로 전망한다. 중국의 입장에서 에너지안보, 식량안보 등을 이유로 러시아와의 군사적, 경제적 협력을 강화할 것이다. 예상 밖의 강력한 경제 제재로 러시아는 중국 이외의 대안이 없을 수 있다. 신냉전체제는 한국에 큰 압박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정치와 국내정치의 구조로 보아 미국을 비롯한 자유진영에 합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중국으로의 수출 감소, 남북한 관계의 냉전화, 에너지안보의 불안정성 심화를 가져올 것이다.
러시아 내부정치는 상당한 혼란이 올 가능성이 크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실패는 푸틴의 실패가 될 것인데,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푸틴은 강력한 권위주의 정치에 의존할 가능성이 크다. 혹은 내부 쿠데타나 권력이동이 발생할 수도 있다. 어떠한 경우라도 러시아 정치는 혼란을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중국의 대러시아 영향력을 증대하려는 시도가 있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열린 미래예측의 필요성이 다시 한번 부각되었다. 대다수 전문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승전할 것으로 전망했다. 승전은 확정적이나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분석은 있었다. 러시아가 안정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우크라이나 시민의 협조가 있어야 한다고 분석하거나, 게릴라 전쟁으로 번져 러시아 군인의 사망자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 것이 그 사례다. 이들의 오판의 이면에는 우크라이나 시민의 저항이 있었다. 우크라이나 시민의 저항이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낸 것이다.
알고 있는 지식과 현재의 추세를 이용한 닫힌 미래예측(forecasting)은 필수적인 것이나, 불확실성과 추세의 단절을 고려한 열린 미래예측(foresight)도 필요하다. 이를 우크라이나 전쟁은 다시 상기시켰다. 코로나가 우리에게 주었던 시사점과 같다.
1980년대 초 소련의 붕괴 후 미국 육군대학은 국제정치의 불확실성이 더욱 커졌다고 진단하며 이를 ‘뷔카(VUCA)’라 칭했다. VUCA는 Volatile, Uncertain, Complex, Ambiguous의 두문자를 모은 것이다. 세계질서가 휘발적이며 불확실하고 복잡하며 모호하다는 의미다. 21세기 들어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지식생산성의 증가 및 세계화 등은 이 뷔카를 가속화시켰다. 우크라이나의 선전과 신냉전체제의 돌입 등은 뷔카를 더욱 재촉할 것이다. 이제 국제기구와 우리나라 정부 및 기업은 열린 미래예측을 바탕으로 기존 전략을 재점검하고 미래변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정당하지 못한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을 기원하고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