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크래커] 죽은 자본에 힘을 불어넣는 디지털 자산…국내 법령 손질은 숙제로

입력 2022-02-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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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보대출 상환이 임박했는데 수중에 돈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존에는 압류나 경매로 넘어갔겠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로 위기를 돌파한 커플이 있다고 합니다.

◇죽은 자산에 생명 불어넣는 NFT…파산 위기서 커플 구제

미국 애틀란타 주에 거주하고 있는 손 멜처(Thorne Melcher)와 맨디 머슬와이트(Mandy Musselwhite)가 그 주인공입니다. 둘은 오리와 거위를 사육할 수 있는 농가주택을 구입했지만 지난 2월 실직했다고 하는데요. 대출 상환이 도래하면서 소중한 농가가 압류 위기에 처했다고 합니다.

커플에게 손을 내민 건 오리들이었습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멜처와 그래픽 아티스트인 머슬와이트는 오리 NFT(Non-Fungible Tokenㆍ대체불가능토큰)을 발행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결과는 잭팟이었습니다.

발행 6시간 만에 1만 개의 오리 NFT가 매진됐다고 하는데요. 12만 달러(약 1억 4200만 원)에 가까운 수익을 거뒀고, 3만5500달러의 대출금을 상환해 농장을 지켰다고 하네요.

▲대출금을 모두 상환했다고 기뻐하는 맨디 머슬와이트. 프로필사진은 직접 발행한 오리 NFT다.  (사진=맨디 머슬와이트의 트위터 갈무리)
▲대출금을 모두 상환했다고 기뻐하는 맨디 머슬와이트. 프로필사진은 직접 발행한 오리 NFT다. (사진=맨디 머슬와이트의 트위터 갈무리)

본인의 연봉을 토큰화한 농구선수도 있었습니다. NBA의 농구선수 스펜서 딘위디(Spencer Dinwiddie)의 이야기인데요. 2019년 당시 브루클린 넷츠(Brooklyn Nets)에서 활동하던 딘위디는 자신과 구단의 3년 치 연봉 계약을 STO(Security Token Offeringㆍ증권형토큰제공) 형식으로 판매할 계획을 세웠었습니다. 토큰이 모두 판매되면 딘위디는 3년치 계약금에 달하는 3300만 달러를 일시불로 받을 수 있었는데요.

투자금을 원금보증형 금융상품에 투자, 2개월에 한 번씩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나눠주겠다 밝히기도 했습니다. 다만 NBA 농구협회의 반대로 계획이 무산됐는데요. 본인의 계약 기간이라는 새로운 자산을 디지털 자산화하는 독특한 방식을 시도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는 "경제적 가치를 설명할 수 있다면 토큰화하지 못할 게 없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며 "자산의 토큰화로 죽은 자본에 힘을 불어넣을 수 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속속 손 뻗치는 외국 금융사들…국내 갈 길은 아직 요원

외국의 경우 발 빠르게 새로운 자산에 주목하고 있는데요.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모회사 인터컨티넨탈익스체인지(ICE)는 디지털 자산 거래소 백트(Bakkt)를 2018년 설립했습니다. 24시간 만기가 있는 비트코인을 거래해 수익을 내고 있다고 하는데요. 2019년 말까지 1170조 원의 누적 거래량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가상자산 커스터디 사업 확장에도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나스닥(Nasdaq), JP모건, 골드만삭스 등 유수의 금융사들이 코인을 발행하는 등 디지털 자산에 대한 관심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반면 국내의 경우 아직 첫발을 떼지 못하고 있는데요. 업계 관계자들은 첫 걸림돌이 '자본시장법'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NFT와 STO 모두 자산에 증권성을 부여해 토큰화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상법상 일종의 재산성이 있다고 가정하고, 여기에 투자할 이들을 모으는 것인데요. 이렇게 발행한 토큰이 증권성을 인정받는다면 자본시장법에 종속돼 금융당국의 규제나 감독하에 놓이게 됩니다.

다만 아직 금융위원회는 디지털 자산의 증권성에 대한 명백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9일 첫 회의를 열고 새로운 자산에 대한 기준을 세워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업계 관계자들은 토큰이 기반을 두고 있는 블록체인의 성격을 헤아려달라고 주문하고 있습니다. 블록체인 기반 사업을 현 금융 체제에 접합하면 갈등이 생길 공산이 커서라고 하는데요.

업계 전문가는 "인허가 문제나 증권 신고서를 제출하고 허가를 얻는 과정에서 새로운 자산에 대한 금융당국의 이해가 필요하다"라며 "전자증권법상 증권들을 중앙집중방식으로 등록해야 하는 여러 법적인 문제들이 있는데, 탈중앙화를 꿈꾸는 기존 기조와도 충돌하는 부분들이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미 SEC는 특정 코인 프로젝트에 제재를 가할 때마다 하위 테스트(Howey Test)를 진행합니다. 공동의 사업에 투자했는지, 타인의 노력으로 인한 이익을 얻었는지 등을 살펴보고 해당 코인의 증권 여부를 따져보는 제도입니다.

EU 또한 가상자산 규칙인 '미카(MiCA)'를 정비하고 있습니다. 2024년까지 유로존에 공동으로 적용되는 규칙을 만들겠다는 것인데요.

이미 투자자와 업계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만큼, 우리 금융당국도 빠르게 대응해야 할 시점입니다. 놓친 기회는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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