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정리를 시작한 날부터 끝내는 날까지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렸던 일은 환자들과 작별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정기적으로 태아 상태를 확인해야 하는 산모는 물론이고, 자궁에 혹이 있어서, 유방암 환자라서, 생리가 불규칙해서…. 어떤 이유이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짧게는 1주일마다 길게는 1년마다 약속한 시간에 어김없이 나를 찾아오던 환자들에게 나의 이직 소식을 알리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아쉬워서 떠난다는 말을 어떻게 전하지, 내가 떠나고 마음에 맞는 의사를 찾지 못하거나 푸대접을 받으면 어쩌지, 조금 일찍 알려드릴 것을 인사가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이런저런 걱정으로 마무리를 하는 한두 달의 진료가 일이 년은 더 되는 느낌이었다. 이런 복잡한 내 마음을 읽었는지, 어느 한 명의 환자도 내게 기분 나쁜 말, 서운한 기색 하지 않고 따뜻한 격려와 대가 없는 응원을 보내주었다.
“의사 선생, 그새 정이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말도 없이 가버리면 어째?” 화를 내시는 듯하더니 직접 재배한 농작물을 보내겠다며 이사 갈 집 주소를 묻는 할머니. “선생님을 만난 건 저와 제 아가에게 행운이었어요. 선생님은 우리 둘 아니 우리 가족 모두를 살려 주신 것이나 다름없어요.” 울면서 나를 꼭 껴안는 산모. “아프면서 많은 의사 선생님들을 만날 수밖에 없었는데, 저를 진심으로 대해준 분은 선생님뿐이었어요. 잊지 못할 거예요.” 손편지를 주고간 암환자. 마침표를 찍는 순간마다 가슴 한편이 정말 총 맞은 것처럼 저릿저릿했다.
고맙게도 나를 따라 병원을 옮기겠다는 분들도 있었고, 나도 한편으로는 그들의 소식이, 그들의 질병의 경과가 궁금하기도 해 그런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나는 모든 환자들에게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아요”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의사를 만날 일이 없다면, 병원에 올 일이 없다면, 특히 이런 대학병원에는 평생 근처에도 올 일이 없다면, 굳이 만나서 안부를 전하지 않아도 어디선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는 셈일 테니 말이다.
홍유미 전북대병원 산부인과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