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로] 초저출산 시대의 단상 - 비혼 對 동질혼

입력 2022-02-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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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욱 서강대학교 사회복지전공 교수

여성이 일생 동안 평균 1명도 낳지 않는 초저출산의 상황이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 원인은 매우 복합적이지만, 가장 표면적인 이유는 결혼의 감소에 있다. 우리 사회가 정서적으로 비혼 출산에 유독 엄격한 시선을 보이는 탓에 결혼은 임신과 출산의 첫 관문이 되기 때문이다. 결혼 감소는 주변에서 너무 흔하게 볼 수 있는 비혼(非婚)과 만혼(晩婚)의 통계에서 확인된다. 통계청에 의하면 연간 혼인 건수는 1995년 약 40만 건에서 2020년 21만 건으로 거의 반 토막이 났고, 같은 시기 초혼(初婚) 연령도 남성 28.4세에서 33.2세, 여성은 25.3세에서 30.8세로 5년씩 늦춰졌다. 결혼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청년층이 많아졌을 뿐 아니라, 결혼을 하더라도 상당한 기반이나 조건을 마련한 후에 천천히 하려는 경향이 확대되고 있음을 뜻한다.

비혼과 만혼은 많은 선진국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지만, 우리 사회의 결혼 형태 변화는 그 속도가 매우 빠를 뿐 아니라 구조적 불평등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히 생각해볼 사안이다.

우선 비혼.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결혼이란 함께 살 집을 장만하고 아이를 낳아 키워야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것임을 이 세대 청년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부모 세대가 자신들을 키우고 입히고 교육하는 데 얼마나 힘들었던가? 더구나 SNS로 사소한 일상까지 공유하며 만족감과 박탈감을 경험하는 시대에, 검소한 결혼식과 단칸방 신혼집으로 새 출발을 알린다는 것은 모험에 가까울 것이다. 결국 경제적 기반이 취약한 청년들에게 비혼은 지극히 합리적 선택이 된다. 가난하면 가족을 가질 수 없는 시대, 모 대선 후보가 결혼축하금과 신혼부부 주택자금 제공이라는 포퓰리즘적 공약을 들고 나온 배경이 아닐까?

한편, 만혼은 사회학 용어인 동질혼(同質婚, Homogamy)의 확산과 관련이 깊다. 동질혼이란 소득, 학력, 사회적 지위 등에서 비슷한 조건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끼리 결혼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자신들의 리그에서 ‘끼리끼리’ 하는 결혼을 통해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고자 하는 욕망은 더 이상 상류층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안정적 직장을 확보했거나 경제적 여유가 있는 중산층 청년들도 아무런 조건 없이 ‘운명적인’ 사랑에 이끌려 결혼에 골인하는 대신, 차근차근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자산을 축적하며 자신들의 격에 맞는 배우자를 고르려 한다. 이제 고소득 전문직 남성들도 자신을 성심껏 내조해 줄 전업주부가 아니라, 경제적 기반과 사회적 지위를 함께 쌓아갈 수 있는 전문직 여성을 선호한다.

결혼은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이지만, 저소득자의 비혼과 고소득자끼리의 동질혼이 쌓이면 전체적인 소득분배의 악화를 초래한다. 얼마 전 한 경제신문 기사에 보도된 서강대 박정수 교수의 분석에 의하면, 1996∼2016년 사이 한국의 가계소득 불평등은 지니계수를 기준으로 0.270에서 0.323으로 악화되었다. 그 원인을 분해해 보니 가장의 소득이나 자산과 같은 비근로소득의 영향은 없거나 미미했지만, 배우자 소득의 격차가 두 배로 벌어지며 나타난 것으로 분석되었다.

더욱이 ‘저소득층은 비혼, 중산층 이상은 동질혼’이라는 구도가 가져올 소득재분배에의 부정적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정부는 초저출산 추이를 되돌리기 위해 천문학적인 예산을 쓰고 있다. 출산장려금, 아동수당, 보육비 지원 등의 혜택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은 가정에만 제공된다. 비혼으로 남아 있는 저소득 청년층은 별다른 복지 혜택은 받지 못하고 세금을 낼 뿐이다. 아이의 수가 부의 척도가 된 세상에서 저출산 대책의 소득재분배 효과는 역진적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비혼과 동질혼으로 갈라지는 가족 형성 기회의 양극화는 단순한 빈부격차 이상의 상실감을 가져온다. 미래와 후손을 포기하는 저소득 청년들은 어떤 꿈을 꿀 수 있을까? 국가와 사회가 우리 청년들의 삶을 더 세밀히 살펴보아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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