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가 부진한 흐름을 이어가는 가운데 기관이 지난 한 달간 코스피에서 약 1조 원에 달하는 순매수세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익률도 지수의 하락 폭 대비 비교적 양호할 것으로 추정된다. 기관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형주를 팔아치우면서 수익률 방어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1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기관은 배당락일이던 지난해 12월 29일부터 지난달 11일까지 ‘팔자’ 행진을 이어가며 2주 동안 약 6조9582억 원을 순매도했다. 지난해 하반기 순매도액인 2조7914억 원의 두 배가 훌쩍 넘는다.
지난달 12일부터는 순매수 전환한 뒤 이날까지 약 8716억 원을 순매수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상장을 앞두고 ‘실탄’ 확보를 위한 수급 공백이 있었지만, 상장 당일에만 코스피 전체에서 2조 원에 달하는 매수세를 보였다.
기관이 가장 많이 담은 종목은 단연 LG에너지솔루션으로, 상장 이후 3조5684억 원을 순매수했다. 순매수 2위인 KT의 순매수액은 4526억 원에 이른다. 뒤이어 LG이노텍(1298억 원), 한국항공우주(1189억 원), SK이노베이션(915억 원) 등을 담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반적인 수익률도 양호할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한 달간 기관이 가장 많이 담은 20개 종목의 추정 수익률을 계산했더니 평균 2.13%를 기록했다. 20개 종목의 지난달 12일 종가와 이날(10일) 종가를 비교해 등락률을 구한 뒤, 이를 평균해 구한 값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상장 첫날인 지난달 27일 종가를 기준으로 계산했다.
같은 기간 2970선에서 출발한 코스피는 하락에 하락을 거듭하며 이날까지 -6.75% 떨어졌다. 20개 종목의 평균 수익률을 크게 하회하는 수준이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3.08포인트(0.11%) 오른 2771.93으로 장을 마쳤다.
전문가들은 기관이 특정 종목을 통해 수익률 방어에 집중했다고 봤다. 기관의 순매수 상위 20개 종목이 2%가 넘는 수익률을 거두는 동안 순매도 상위 20개 종목의 평균 수익률은 -11.80%였다.
특히 시가총액 상위 종목에 대한 매도세가 두드러졌다. 삼성전자(7226억 원), LG화학(2796억 원), 기아(2358억 원), 현대차(2094억 원), SK하이닉스(2027억 원) 등이 순매도 상위권에 대거 포진됐다. 이외에도 최근 주가가 크게 떨어진 셀트리온(1819억 원), SK바이오사이언스(1300억 원), HDC현대산업개발(1273억 원) 등을 팔아치웠다.
투자 종목을 살펴보면 기관의 ‘성장주’ 선호 현상이 사라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성장주는 미래의 성장성을 바탕으로 고평가된 종목들을 가리킨다. 지난해 하반기 순매수 상위 종목에 이름을 올렸던 크래프톤, 카카오페이, 하이브 등은 올해 들어 순매도로 전환했다. 반대로 저평가된 종목과 6개월간 주가 상승률이 낮은 종목들을 담았다.
이경수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올해 들어 저평가된 종목군이 이례적인 성과를 기록하고 있다”며 “미국 통화정책의 매파 기조와 글로벌 경기 회복 가능성 등으로 금리가 상승하면서 자산 재조정(리밸런싱)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의 긴축 행보와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증시를 둘러싼 대내외적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가운데, 기관의 투자 패턴을 눈여겨봐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IBK투자증권은 “글로벌 금리 환경 변화와 함께 기관들의 투자 스타일 변화 가능성이 있는 만큼, 추가적인 변화를 지속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