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0조 원 긴급지원금은 ‘빗나간 화살’
사무실 공실률 30년래 최고 수준
신규 채용, 인플레이션, 금리 걸림돌
새해 들어 코로나19와 공존하는 이른바 ‘위드 코로나’를 실행에 옮기려던 뉴욕시 주요 기업들은 이를 전면 보류했다. 오미크론 확산으로 한때 전국 신규 감염자 숫자가 하루 80만여 명에서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긴 했지만, 사망자는 크게 늘고 있어 일상으로의 복귀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판단한 것이다. 뉴욕시가 1월 187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골드만삭스 등 대기업 75%가 직원들의 사무실 복귀를 일단 미뤘다. 직원 절반 이상이 출근할 수 있으려면 1분기는 지나야 할 거라고 보는 기업이 61%나 됐다.
정상 출근은 고사하고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거나 비필수인력 출근 금지, 대면회의 중단, 출장 금지 등 방역 강화 조치를 내거는 업체들도 늘었다. 또 직원들의 코로나 정기검사를 의무화하거나 날짜를 지정해 검사를 받도록 하는 업체들도 많다.
최근 두 달여 동안 상인들은 길고 어두운 팬데믹 터널에서 벗어날 거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해외 여행객이 늘고, 식당들도 실내 정상영업으로의 복귀 준비를 서둘러왔고, 브로드웨이 극장가에도 관람객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도 잠시, 오미크론의 출현은 이 같은 무드에 찬물을 끼얹었다.
직격탄을 맞은 건 또다시 제한영업을 해야 하는 소상인들. 백신접종 카드제 실시로 고객은 줄고, 매출은 반 토막이 났다. 영업 축소로 서비스 업종 종사자들의 평균 근무시간은 2020년 주당 25.4시간에서 지난해에는 22.9시간으로 줄었고, 오미크론 이후 더 줄어들고 있다. 성급하게 두 걸음 내디디려 했다가 되레 한 발 뒷걸음질 치게 된 형국이다.
상인들이 바닥을 치고 올라가지 못하고 주저앉은 데는 빗나간 정부의 긴급지원책도 한몫했다. 연방정부가 소상인들을 위해 푼 8000억 달러(960조 원)의 천문학적인 긴급자금이 실직 위기에 처한 직원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업주나 주주, 채권자의 주머니로 흘러 들어가면서 흐지부지 사라진 것.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은 대량실업을 막고 소상인을 보호하려는 임금보전프로그램(PPP) 지원금이 실효를 거두지 못함으로써 회복력을 상실했다고 진단했다.
팬데믹이 가져온 심각한 후유증 가운데 하나는 양극화의 심화다. 업종에 따라 명암이 크게 엇갈렸고, 빈부격차는 더 커졌다. JP모건체이스, 골드만삭스 같은 월스트리트 거대기업들은 팬데믹 기간에 되레 막대한 수익을 올렸고, 연말에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첨단기업들도 팬데믹에 아랑곳하지 않고 성장을 거듭했다. 지난해 12월 뉴욕시 실업률은 8.8%로 전국 평균 3.9%보다 크게 높았음에도 시 전체 소득은 늘어나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실업자는 늘었는데, 소득은 높아진 것이다. 코로나로 인한 양극화 현상은 2020년부터 뚜렷해졌지만, 오미크론이 이를 더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부의 양극화로 인한 부동산 가격 폭등은 전문가들조차 예상치 못한 충격파를 몰고 왔다. 엄청나게 풀린 유동성 자금과 제로금리를 등에 업고 부동산 시장은 최근 32년래 가장 큰 폭으로 치솟았다. 전국적으로 지난해 집값이 24%나 올랐고, 절반 이상의 매물이 호가보다 높은 값에 거래됐다. 렌트도 덩달아 일 년 새 30~40%나 폭등했다. 궁지에 몰린 건 무주택 서민들. 20만여 가구가 뉴욕주 정부의 추가 긴급 렌트 지원금을 기다리고 있고, 59만 가구가 월세를 제때 내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양극화 심화는 시민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고, 사회분열과 갈등의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소비 위축으로 상업용 부동산 시장도 회복 기미가 안 보인다. 번영의 상징이었던 맨해튼은 지금 개점휴업 상태다. 사무실 공실률이 30년래 최고치를 기록했고, 새 입주자를 찾는 빈 점포가 수두룩하다. 그랜드센트럴터미널 상가는 30%가량이 비어 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소상인들이 재기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구인난과 인플레이션. 유통대란과 원재료 공급불안 등도 한 요인으로 꼽았다. 3월부터 시작되는 금리인상과 새로운 변이종의 출현 예고도 불안 요소들이다. 팬데믹 3년 차에 접어든 지금 경제의 근간인 소상인들의 불안을 잠재워줄 소식은 어디서도 들리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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