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세대는 인플레이션이라는 것을 체험해 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는 80년대 초반 이후, 선진국들도 80년대 중반 이후로는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겪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60년대에는 평균 10% 이상, 70년대 말에는 무려 25% 이상의 물가상승률을 경험한 바 있다. 이러한 추세는 80년대 초 시장개방의 확대로 10% 미만을 기록하면서 안정되기 시작하고, 90년대 이후에는 5% 이하의 물가상승률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도 70년대까지는 지속적으로 연평균 10% 이상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하다가 폴 볼커 연방준비제도 의장 시절 4%대로 물가상승률을 제어한 이후 인플레이션의 공포로부터 벗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인플레이션은 무슨 문제를 야기할까?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은 화폐 가치를 떨어뜨리므로 실제적으로 조세와 같은 효과를 가지기 때문에 순후생손실을 가져온다는 점을 지적한다. 즉 화폐가치가 떨어지는 것에 대비하여 화폐의 보유를 줄이고자 할 것인데, 그 한 방법으로 필요한 현금을 한 번에 많이 인출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에 나누어서 소액으로 인출하고 현금보유도 항상 소액으로 한다는 것이다(은행을 여러 번 가게 되어 구두창이 쉬 닳는다는 뜻에서 ‘구두창비용’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물가상승폭이 엄청나게 크지 않은 경우에는 이 문제를 체감하기 어렵지만, 현재 남미의 일부 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초인플레이션 상황에서는 이것이 보통 큰 문제가 아니다. 며칠 혹은 한 달 만에 화폐가치가 반으로 떨어지는 상황하에서는 같은 액수의 현금 보유는 줄이고 생활필수품 같은 실물의 보유는 늘려야 하는 것이 생존의 기본원칙이 될 수도 있다.
다음으로 양도소득세 또는 금융소득세 같은 세제는 인플레이션의 효과를 감안하지 않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은 세부담의 왜곡을 가져올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주택을 취득한 지 3년이 지나 양도소득이 1억 원이 발생했다 치면 물가상승을 감안한 실제 자산가치 증가는 1억 원이 못 되지만 양도소득 베이스는 그대로 1억 원이 된다. 만약 인플레이션이 급격히 진행된다면 이런 경우에 대한 해법 마련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이외에도 인플레이션은 채권자에게는 불리하게, 채무자에게는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상환 이자율이 고정된 상태라면 당연히 그렇게 될 것이며, 가변 이자율의 경우도 이자율 상승속도가 인플레 진행 속도를 못 따라갈 경우가 많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고정급을 받는 봉급 생활자에게 불리할 가능성이 큰데, 그 이유 역시 임금상승률이 물가상승률보다 낮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아울러 급격한 인플레이션은 개별 기업의 입장에서 가격조절을 자주 해야 하는 문제를 발생시킨다는 이른바 ‘메뉴비용’의 문제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점을 야기하는 급격한 물가상승이 곧 닥칠 것인가? 필자의 판단으로는 당장 10%를 넘는 인플레이션이 전 세계적으로 발생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상당한 수준의 인플레이션이 진행되는 것은 확실하다 해야 할 것인데, 사실 우리 경제로서는 그 대응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필자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각국이 취하고 있는 인플레이션 억제책, 그중에서도 긴축적 통화정책이 미칠 부정적 효과를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정책들은 결국 전 세계적인 이자율 상승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어 있는데, 공공과 가계부문 부채가 모두 급격히 늘어난 우리의 현실에서는 이자율 상승의 부정적 효과가 더욱 클 수밖에 없으므로 정부의 적절한 정책적 대응이 요구된다.
이미 가계부채에 대해서는 증가 억제를 위한 여러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 공공기관 할 것 없이 공공부문 부채에 대해서는 별반 대응이 없고, 오히려 대선을 앞두고 재정적자 문제는 악화되는 느낌이다. 코로나 대책 등 불가피한 지출 증가가 이해는 되지만 그럴수록 다른 부문에서의 지출 축소 노력 역시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노력을 게을리하면 인플레이션 자체보다 인플레이션 방지책의 영향이 더 클지도 모른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