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에 있어서 과학기술은 사회 발달에 큰 기여를 해왔다. 인류의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도시화가 진행된 배경에는 증기기관, 전기 및 내연기관 등 범용기술의 발달이 토대가 되었다. 1차 산업혁명의 진행은 민주주의, 자본주의의 확산과 정착을 가져왔고, 교육제도와 가족구조의 전환을 일으켰다. 기술의 발달에 따른 생산력 증가, 이에 따른 생산체계의 변혁이 정치, 경제 및 사회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왔다. 그렇다고 기술결정론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나, 기술의 발달이 이들 변화의 근저에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데 인더스트리 5.0은 사회와 경제적 요구를 기술이 만족시켜야 함을 강조한다. 사회, 기술, 경제, 환경 및 정치가 전체적으로 연계되어 있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인더스트리 5.0의 촉매 기술이 달라졌다. 인더스트리 4.0은 인공지능, 디지털 트윈을 위한 산업사물통신(Industrial Internet of Things), 3D 프린팅 등 디지털 기술의 발달을 배경으로 한다. 유럽위원회는 인더스트리 5.0을 지원하는 기술 그룹으로 여섯 가지를 들었다. 개인화된 인간과 기계 인터페이스 기술, 생명과학 기술과 신물질 기술, 디지털 트윈과 시뮬레이션 기술, 데이터 이전과 저장 및 분석 기술, 인공지능, 에너지 효율화 기술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 기술 그룹에는 다양한 구체적 기술이 포함된다. 예를 들어 인간과 기계 인터페이스에 실감기술(Immersive Technologies)이 포함된다. 참고로 실감기술은 메타버스의 기반기술이다. 실감 없는 메타버스는 그 영향력과 의미가 기존의 웹이나 3D 게임과 다르지 않다.
인더스트리 4.0은 일자리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인더스트리 4.0이 주로 제조업 현장의 변화에 대한 것이지만 스마트 서비스, 스마트 물류를 포괄하고 있으며, 디지털 전환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1차와 2차 산업혁명이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힘의 증가를 가져왔다면, 인공지능 등의 디지털 기술은 그간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고 불렸던 인지노동의 자동화를 가능하게 한다. 인지노동이란 외부 사물에 대한 인식과 이에 따른 노동으로, 대표적으로 자동차 운전, 배송, 콜센터 응답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인지노동과 지식노동 사이의 구분이 명료하지 않다. 예를 들어 X-레이나 심전도의 분석과 해석은 인지노동에 해당할 수 있다.
인지노동의 자동화와 글로벌라이제이션은 직업과 일자리 풍경의 변화를 가져온다. 인더스트리 4.0과 디지털 전환이 가져올 기술실업에 대한 논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인더스트리 5.0이 성공하면 기술실업 현상이 줄어들거나 사라질 것인데, 그렇지 못하다면 기술실업은 가속화될 것이다. 생산성과 일자리가 모두 역동적 균형을 유지하는 정치경제 시스템과 기술발달이 필요하다.
인류가 아직 화석연료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1차, 2차 산업혁명이 에너지와 관련된 범용기술이며, 이들 범용기술이 지구온난화를 가져왔다. 인류의 생산성 증가와 화석연료 사용량 사이에는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경제적 번영과 지속가능성 사이에는 ‘아직’ 역상관 관계가 존재한다. 경제적 번영의 지속을 위해서는 화석연료를 사용해야 하며, 이는 인류에게 대재앙을 가져온다. 그렇다고 급격하게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은 국가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치지만 저개발국을 빈곤의 나락으로 몰게 할 것이다. 따라서 인더스트리 5.0은 녹색 에너지 기술의 발달을 요구한다.
인더스트리 5.0은 유럽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와 인류가 가야 할 방향이다. 이는 정해진 경로가 아니라 비용을 들이고 고통을 인내해야 도달 가능한 경로다. 단기적 이익을 위해 부동산과 석탄발전소에 투자할 것이 아니라, 경제적 혁신과 사회공동체 및 지구 생태계의 균형에 초점을 두어야 인더스트리 5.0이라는 경로에 도착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더스트리 5.0에 대한 논의는 본격화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논의에 착수한 정도이며, 그 촉매기술의 성숙도가 낮은 것도 원인이다. 이를 뒤집어 보면 한국사회가 인더스트리 5.0 논의의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현재까지 경제적 유인을 위해 과학기술을 발달시켰다면, 앞으로는 사회와 환경 수요를 위해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시선을 들어 좀 더 먼 곳을 내다볼 줄 알아야 한다. 기성세대와 청년, 과학기술 인력과 전문가가 모두 그렇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