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난 개미들, 국장 털고 미장으로…1년 만에 투자액 30조 감소

입력 2022-01-19 14:47 수정 2022-01-19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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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신미영 기자 win8226@)
(그래픽=신미영 기자 win8226@)

김소미(28, 가명) 씨는 LG화학-LG에너지솔루션(LG엔솔) 사태를 보면서 일부 국내 주식 종목을 팔고 미국 주식 투자를 늘리기로 결심했다. 한국의 기업 거버넌스에 실망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미국 주식시장(미장)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뉴스에서 추운 날 시위하는 LG화학 주주들을 봤다”며 “국내 주식은 수많은 선례가 있어 LG화학 주주처럼 뒤통수 맞을 것 같아 무섭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5:5인 미장과 국내 주식시장(국장)의 비율을 7:3으로 수정할 계획이다. 최진영(27, 가명)씨도 김씨처럼 국내 주식에서 서서히 손을 떼기로 했다. 최씨는 “국장은 가볍게 휘청거린다”며 “현재 (국장과 비교해) 40%인 미장 투자 비율을 70%까지 늘릴 것”이라고 했다.

1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초와 말을 비교한 개인의 주식 거래 실적(순매수)은 25조 원에서 -7조 원대로 떨어졌다. 연초만 해도 25조 원의 주식을 사들였던 개인이 연말엔 7조 원 팔았다는 뜻이다. 월별 순매수를 보면 △1월 25조8710억 원 △2월 9조5960억 원 △3월 7조6020억 원 △4월 7조450억 원 △5월 7조7860억 원 △6월 5조3610억 원 △7월 9조290억 원 △8월 6조9900억 원 △9월 4조6430억 원 △10월 2조9130억 원 등 등락을 반복하며 하락하다가, △11월 -2조3880억 원 △12월 -7조5160억 원을 기록했다. 마지막 두 달은 산 주식보다 판 주식 액수가 더 컸다. 김씨와 최씨처럼 국장에서 손을 털고 나간 동학 개미들이 많다는 것이다.

같은 기간 국내 투자자들이 미장에 투자한 금액은 등락을 반복했지만, 매도가 더 많은 달은 없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월별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거래 실적(순매수)은 △1월 45억3200만 달러(한화 약 5조4016억 원) △2월 28억6500만 달러 △3월 27억7900만 달러 △4월 21억 달러 △5월 26억3300만 달러 △6월 24억6800만 달러 △7월 98억 6500만 달러 △8월 54억2900만 달러 △9월 85억5200만 달러 △10월 44억6300만 달러 △11월 26억9300만 달러 △12월 24억7800만 달러 등이다.

동학 개미들이 국장을 이탈하는 이유는 경영진과 이사회가 일부 주주에게만 충성하는 기업의 행태로 풀이된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소액 주주를 배신한다면 해당 기업에 대한 투자를 지속할 수 있을까”라며 “안타깝게도 한국의 주식 시장에서는 그런 유형의 이슈가 올해만 해도 비일비재했다”고 지적했다. 최 연구원은 “한국 기업의 거버넌스는 글로벌 최하위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상장 회사가 핵심 부서를 자회사로 떼어내 재상장하는 기업들의 물적 분할이 유행처럼 번져 투자자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LG화학-LG엔솔이다. LG화학은 지난해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키운다는 명분으로 LG엔솔을 물적 분할해 상장한다고 밝혔다. 주주들이 이에 반발하는 이유는 이미 상장된 LG화학에 주가에 배터리 사업부(LG엔솔)의 가치가 반영돼 있는데, LG엔솔이 분리되면서 LG화학의 주가가 내려가기 때문이다. 실제 LG화학의 주가는 지난해 1월 최고 105만 원에 거래되다가 지난달엔 장중 61만1000원까지 떨어졌다. 이 외에도 SK이노베이션-SK온, 이마트-SSG닷컴, 카카오-카카오모빌리티 등이 물적 분할 후 자회사 상장 절차를 밟을 계획으로 이들 모회사 주가에 대한 투자자의 불안은 커지고 있다.

카카오페이 경영진의 ‘먹튀(먹고 튀기)’ 논란도 국장이 신뢰를 잃은 데 일조했다. 지난달 류영준 카카오페이 대표이사를 포함한 경영진 8명은 카카오페이가 상장한 지 한 달여 만에 스톡옵션으로 받은 주식을 매각해 878억 원의 차익을 챙겼다. 회사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경영진이 자사주를 대형으로 매각하는 것은 시장에서 악재로 인식된다. 경영진이 매도 당시 주가가 최고점이며 앞으로는 하락할 일만 남았다고 판단한 이유에서다.

‘카카오’라는 간판과 류 대표가 상장을 앞두고 진행한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했던 말들을 믿고 카카오페이의 투자자들만 ‘닭 쫓던 개’ 신세가 됐다. 류 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진입장벽을 낮추는 것이 사업의 본질이고 그 정체성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카카오페이는 경영진이 주식을 매도한 날 주가가 6% 떨어졌다. 이후 주가는 지속해서 하락하며 20만8500원에 거래되던 1주는 최근 13만3500원을 기록했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교수는 “(기업들은)국민이 이용해서 기업이 성장했으니 국민에게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며 “최근의 화두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고, 가장 중요한 건 사회적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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