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언론인과 정치인 등을 대상으로 한 통신기록 조회 파장이 커지고 있다. 통신기록 조회는 다른 수사기관에서도 통상적으로 이뤄지는 합법적인 수사 방식이지만 유독 공수처를 향한 시선이 곱지 않다. 법조계에선 무작위적인 통신기록 조회로 정당성을 잃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차장검사 출신 A 변호사는 28일 “아무리 합법적인 방법이라 할지라도 공문을 마구잡이로 보내 통신 기록을 살펴본 것은 수사기관으로서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비판했다.
통신기록 조회는 공수처 이외의 수사기관에서도 일반적으로 이뤄진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검찰과 경찰, 국정원 등에 제공된 통신사실 확인 자료 건수는 24만938건이다.
이동통신사의 통신기록 제공 근거는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3항이다. 법원이나 검사, 수사관서의 장, 정보수사기관의 장이 재판, 수사, 형의 집행이나 국가안정보장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문서를 요청하는 경우 통신기록을 제공할 수 있다.
관련 법에 근거가 있는 만큼 수사기관의 정당한 통신기록 조회는 문제는 없다.
그러나 공수처에는 ‘언론사찰’과 ‘공권력남용’ 등의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기자와 야당 의원 등 100여 명이 넘는 대상으로 통신기록을 조회한 것은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A 변호사는 “검찰은 통신기록을 조회하더라도 적당한 범위 내에서 한정적으로 하는데 이처럼 마구잡이로 광범위하게 하는 것은 대규모 조직범죄가 아니고서는 잘 찾아보기 어렵다”며 “불법 여부를 떠나 공수처는 공권력을 필요한 데에만 절제해서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수처는 기자의 가족이나 지인, 공수처 취재와 무관한 외신 기자들에 대해서도 통신기록을 조회한 정황이 드러났다. 고위 공직자를 대상으로 수사를 펼치는 공수처가 기자와 민간인 등을 대상으로 통신기록을 조회한 것이 적절하냐는 지적도 나온다.
부장검사 출신의 B 변호사는 “통신기록 조회가 불가피하다면 누가 들어도 납득할만한 명분을 갖춘 뒤 해야 하는데 지금의 공수처는 그런 점이 부족하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향후 통신기록 조회 등에 절차적 하자가 있다면 증거 능력이 박탈될 여지도 있다”며 “공수처가 급하게 만들어지며 형사소송법에 대한 교육이 잘 안 돼 있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법조계에선 관련 법이 너무 느슨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국회는 관련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은 28일 이통사가 통화내역 등을 수사기관에 제공한 경우 가입자에게 그 사실을 통보하는 내용의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현행 법상 이통사는 수사기관이 특정인의 통신자료제출을 요구하더라도 이용자에게 관련 사항을 통보할 의무가 없다. 개정안은 그 대상자들에게 통신자료를 제공한 사실과 그 내용을 통보하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