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들이 봉쇄령까지 다시 꺼내들며 강력하게 대응하는 것은 오미크론 변이의 전파 속도가 다른 변이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너무 빠른 감염속도가 의료시스템을 압도해 제때 치료받지 못한 환자들이 속출하면 결국 의료 붕괴가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우리나라는 19일 기준 오미크론 확진자가 누적 178명으로 아직 해외처럼 급속하게 확산하기 전인데도 벌써 의료체계 붕괴 우려가 크다. 이날 국내 위중증 환자는 이틀째 1000명을 넘어서 전날에 이어 최다 기록을 썼고 신규 확진자는 수일째 6000~7000명을 오르내리고 있다.
실제 주변인들 중에서 병원에 갔다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병세가 악화한 사례가 들려온다. 경기 양주에서는 코로나에 확진돼 재택 치료 중이던 임신부가 16곳의 병원에서 병상을 못 구해 결국 구급차에서 출산했다는 보도도 전해졌다.
지난달 초 위드 코로나를 시작하면서 일상 회복의 기대를 품었던 한국이 이런 혹독한 연말을 맞게 된 것은 고비마다 정부의 판단 미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방역당국은 백신 수급이 원활하지 않자 백신 ‘보릿고개’를 피하기 위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1, 2차 접종 간격을 8주~12주로 고무줄처럼 그때그때 늘렸다 줄였다 운영하면서 중화항체 효력을 감소시켰다는 비난을 받았다.
위드 코로나를 시행하면서는 하루 확진자가 최대 1만 명이 나와도 대응이 가능하다고 호언했지만 6000~7000명대 신규 확진이 며칠 동안 계속되자 곧장 심각한 의료 공백 사태가 발생했다. 11월에 확진자 3000명이 발생할 때부터 전문가들은 의료체계 붕괴를 경고했지만, 정부는 철저한 검증 없이 위드 코로나를 강행했다. 결국 정부는 중증화율 가정을 잘못해서라고 인정했다. 당초 정부가 가정한 중증화율은 1.6% 정도였으나 현재 확진자 7000명 상황에서 중증화율은 2~2.5% 내외까지 올랐다.
코로나 상황이 2년여가 돼 가는데도 방역 컨트롤타워가 혼선을 빚고 있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청와대(방역기획관)를 비롯해 질병관리청(중앙방역대책본부), 행정안전부(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보건복지부(중앙사고수습본부) 등 방역 기관이 난립해 각각의 논리로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누구도 결정적인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잦은 말 바꾸기로 국민들을 '희망고문'하고 있다. 위드 코로나 이후 이달 초 특별방역 대책을 발표하더니 2주 만인 지난주 두 번째 방역 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지금의 잠시 멈춤은 일상 회복의 길에서 ‘유턴’이나 ‘후퇴’가 아니라 변화되는 상황에 따라 꼭 필요한 속도 조절”이라며 거리두기가 2주간 시행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 말을 믿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이 시행되는 2주 사이에 확산세를 꺾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제약사 화이자는 코로나19 사태가 2024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더 우울한 전망을 내놓은 터다.
코로나가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무한정 거리두기만 할 수도, 무작정 위드 코로나를 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생활과 방역에 균형을 찾아보려는 정부의 고민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코로나 시국 3년째를 앞두고 전문가 의견보다 근거없는 낙관론이나 정치 상황에 휘둘리는 임기응변식 대응은 더 이상 안 된다. 원칙과 상식이 없는 정책은 국민 신뢰를 얻지 못하고 사회적 분열과 불만만 증폭시킬 뿐이다.
정부는 거리두기에 따른 합리적인 손실보상, 추가 접종의 과학적 근거와 필요성 등 보다 진정성 있게 국민을 설득하는 한편 백신과 치료제를 확보하는 등 기본으로 돌아가 코로나와의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 그래야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길이 조금이라도 더 빨라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