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메타버스’에 흠뻑 빠져들고 있지만, 정작 기술 굴기를 자부하는 중국이 잠잠하다. 왜일까.
2017년 인류 최초의 ‘우주국가’ 아스가르디아는 홍콩에서 국민모집 캠페인을 벌였다. 이 나라의 레나 드 위네 총리는 당시 로이터의 논평 사이트 ‘브레이킹 뷰’에 중국인들의 지대한 관심에 놀라 홍콩에서 이벤트를 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 이벤트에는 많은 사람이 몰렸고, 드 위네 총리는 가상화폐에서부터 지구 밖 문명에 관한 자신의 정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슈를 놓고 청중들과 열띤 대화를 펼쳤다. 현재 아스가르디아의 최고 판사는 중국 변호사다.
아스가르디아는 러시아 사업가이자 과학자인 이고르 아슈르 베일리가 건국했다. 그는 2016년 성층권 밖에 평화롭고 민주적인 유토피아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발표하며 각국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나라 이름은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신의 나라 ‘아스가르드’를 따서 지었다. 217개국·지역에서 30만 명 이상이 ‘아스가르디아 시민’에 온라인으로 등록했고, 이 중 11만 명이 정식 국민이 됐다.
주목할 점은 아스가르디아의 국민모집에 중국인들이 큰 관심을 보였다는 점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도시의 획일적이고 답답한 삶에 불만을 품은 젊은이들이 공상과학(SF)이나 가상 세계에서의 롤플레이잉 게임에 빠져들고 있다. 화성으로의 이주 희망자 모집에는 1만3000명 넘게 지원했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비디오 게임 시장으로, 지난해 총 매출액은 460억 달러(약 55조 원)로 추정된다.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나 동종 기업들은 젊은이들을 겨냥해 메타버스 산업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메타버스 관련주의 거품은 엄청나다. 선전시장에 상장된 ZQ게임은 메타버스와 게임 사업에 진출한다고 발표해 연초 대비 주가가 300%나 상승했다. 마찬가지로 인마이쇼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메타버스 플랫폼 ‘혼버스’를 개발 중이라고 발표한 이후 주가가 상승했다. 가상현실(VR)용 헤드셋과 클라우드 서비스 기업 주가도 상승하고 있다.
이는 당연히 중국 당국의 사정권에 들어왔다. 증권거래소 간부들은 ZQ게임과 인마이쇼를 조사하고 있으며, 국영 미디어들도 비판적인 논조로 보도하고 있다.
최근에는 ‘파머스 월드(Farmers World)’를 비롯한 블록체인 기술 기반 P2E(Play to Earn) 게임 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P2E 게임은 블록체인 기반 게임을 통해 플레이어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게임의 한 유형이다. 중국 관영 CCTV는 이 P2E가 사기의 일종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9일 논평을 통해 메타버스 가상 부동산의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메타버스 가상 부동산 거래는 변동성과 사기, 불법 자금 모금, 자금세탁의 위험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8월 말에는 중국 게임 부문을 총괄하는 국가신문출판서(NPPA)가 청소년의 온라인 게임 시간을 일주일에 3시간으로 제한하는 새로운 규정을 발표하는 등 중국 당국은 게임 산업과 가상자산에 대한 규제를 갈수록 강화하고 있다.
중국 당국이 이처럼 오락성 산업을 옥죄는 건 젊은이들 사이에서 퍼진 ‘탕핑주의’ 때문이다. 탕핑은 ‘반듯하게 드러눕다’란 뜻으로, 탕핑주의는 최저 생계를 유지할 정도의 아르바이트만 선호하는 젊은이들의 자포자기 풍조를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젊은이들이 취업·결혼·연애·출산·내집마련 등 5가지를 포기한다는 의미인 ‘5포 세대’와 같은 맥락이다.
외신들은 탕핑주의가 강압적인 공산당 일당 통치에 맞서는 중국 MZ세대 특유의 저항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드러누운 부추는 베기 어렵다’는 밈은 탕핑 운동의 상징이 됐다.
이에 중국 당국은 젊은이들이 열심히 살지 않고 VR 헤드셋을 착용하고 가상 공간으로 도피해 버리는 분위기를 경계하고 있다. 게다가 메타버스에서는 중국 정부가 금지하고 있는 가상화폐가 사용된다. 정부는 버블을 초래하기 쉬운 ‘NFT(대체불가능토큰)’ 등 가상 자산도 금지하고 있다. 모바일 게임이나 온라인 게임과 달리 이러한 플랫폼은 감시와 검열이 어렵다는 성질 때문에 당국을 더 긴장하게 만든다.
전 세계에서 메타버스와 NFT 등 가상 세계 열풍이 불고 있지만, 중국 쪽에서 이렇다 할 기술이 소개되지 않는 이유다. 로이터통신은 메타버스 관련 상품과 서비스를 중국에 수출하려면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 일고 있는 가상 세계에 대한 이상보다는 정치 현실을 주시하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