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00억 원대 통상임금 소송의 향방은 이번에도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 적용 여부가 갈랐다. 대법원은 근로자들이 요구하는 추가 수당을 지급하더라도 현대중공업의 경영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6일 현대중공업 노동자 10명이 전체 노동자 3만여 명을 대표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소송 상고심에서 원고패소한 원심판결을 뒤집어 파기환송했다.
재판부는 예측 가능한 경영 악화를 이유로 신의칙을 배척할 수 없다며 좁게 해석했다. 또 통상임금 인상으로 인한 실질임금 상승률과 경영지표를 비교하는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해 신의칙 위반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다.
신의칙은 '상대방의 이익을 배려해야 하고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내용이나 방법으로 권리행사를 해서는 안 된다'는 근대 사법의 대원칙이다.
통상임금 소송에서 신의칙은 2013년 12월 갑을오토텍 사건을 계기로 주목받았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사용자에게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지워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신의에 현저히 반할 수 있다’며 초과근무수당 등 차액을 소급ㆍ청구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놨다.
이후 통상임금 소송에서 회사 측은 근로자의 각족 추가 수당 요구에 신의칙으로 맞섰다. 그러나 한동안 기업의 경영상 어려움을 이유로 신의칙을 인정한 경우는 드물었다. 지난해 7월 대법원은 쌍용차 통상임금 사건에서 처음으로 기업의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인정해 분위기가 반전됐다.
그러나 9년간 이어진 이번 현대중공업 소송에서 다시 신의칙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대법원은 '경영상 어려움을 극복할 가능성 있는 경우'까지 신의칙을 엄격하게 판단했다.
재판부는 “추가 법정수당의 규모, 추가 법정수당 지급으로 인한 실질임금 인상률, 통상임금 상승률, 기업의 당기순이익과 변동 추이, 동원 가능한 자금의 규모, 인건비 총액, 매출액, 기업의 계속성·수익성, 기업이 속한 산업계의 전체적인 동향 등 기업운영을 둘러싼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기업이 일시적으로 경영상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사용자가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경영 예측을 했다면 그러한 경영상태의 악화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고 향후 경영상 어려움을 극복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신의칙을 들어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를 쉽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현대중공업의 매출액 등 경영지표가 2013년까지 전반적으로 양호했으며 매출총이익률 등은 2007년 이후 감소 추세를 보였으나 경영 상태가 열악한 수준이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2014년 무렵 경영상태의 악화는 회사가 예견할 수 없었던 사정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원고 측이 요구한 2009년 12월 2014년 5월까지 4년 6개월간의 통상임금 소급분을 지급하더라도 경영상에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라는 취지다.
재판부는 “국내외 경제 상황의 변동에 따른 위험과 불이익은 오랫동안 대규모 사업을 영위해 온 기업이 예견할 수 있거나 부담해야 할 범위 내에 있고, 피고의 기업 규모 등에 비춰 극복할 가능성이 있는 일시적 어려움이라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