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기준금리 결정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향후 통화정책에 있어 대통령선거와 총재 임기 등 경제외적 이벤트들이 미칠 영향력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과거 이와 유사한 질문에 이 총재는 이번 답변과 같은 취지의 답변을 반복해온 바 있다.
거창하게 한은법이나 통화정책이 지향해야 할 바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 총재의 이 같은 답변은 당연히 옳은 말이고, 또 그렇게 가야 할 지향점일 수 있겠다. 하지만 그간의 통화정책 결정을 되돌아보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또, 경제도 사회과학이어서 과학(science)이 아닌 아트(Art) 영역이다. 정책결정에 있어 정치경제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 한은이 현재와 같은 기준금리를 통화정책 결정수단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던 1999년부터 현재까지를 살펴보면, 보궐선거를 제외한 대선·총선·지방선거 일정과 당연직인 총재와 부총재를 포함한 금통위원 임기종료일이 있었던 달에 기준금리를 변경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시계를 그 직전달까지 확장하더라도 2002년 6월 13일 지방선거 직전달인 그해 5월과, 2006년 3월 31일 박승 총재와 이성태 부총재 퇴임이 있었던 직전달인 그해 2월 단 두 차례뿐이다.
설과 추석 명절, 연말·연초라는 이벤트 역시 통화정책을 제한했던 요소다. 긴 명절 연휴에 경제데이터가 왜곡되면서 판단이 어렵다는 점, 기업 입장에서 새해 연간 경영계획 수립이 끝난 초장부터 기준금리 변경에 따라 계획이 어그러질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는 게 역대 금통위원들과 한은 담당자들이 기자에게 직접 해 줬던 설명이다.
실제 이 이벤트와 맞물려 금리변경이 이뤄진 것은 현재까지 다섯 차례뿐이다. 가장 최근의 일도 10년 전인 2011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물가상승 압력이 지속되면서 이명박(MB) 정부 차원에서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했었던 때다.
한은 통화정책 시계는 이미 2022년을 향하고 있다. 올해 두 번 인상이 이뤄지면서 현재 연 1% 수준인 기준금리가 내년 말 1.5%일지 1.75%일지 벌써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내년에도 금리인상이 불가피한 경제적 요인들이 수두룩하다. 우선, 내년 초까지는 3%대 물가 여파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은 전망을 신뢰한다면 내년 상반기 중엔 물가상승률을 유발하지 않고 우리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최대 성장세인 잠재성장률보다 실제성장률이 더 높아지게 된다. 소위, 그간 이어져 왔던 GDP갭(경제성장률 격차) 마이너스가 해소된다. 내년 상반기 중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을 끝낼 것으로 보이는 미국 연준(Fed)도 내년 하반기 금리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와중에 내년 3월 9일 대선을 시작으로 3월 말 이주열 총재 임기 종료, 5월 20대 대통령 취임 및 임지원 위원 임기 종료, 6월 지방선거까지 경제외적 이벤트가 즐비하다. 1월 연초와 2월 설날도 있다.
더군다나 한은 총재 공석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새 대통령이 취임하는 5월까지도 자리가 빌 수 있다는 게 한은 안팎의 분위기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2월 말 내지 늦어도 3월 초엔 인선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대선 일정과 겹치면서 인선 절차가 원활히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특별한 상황이 없는 한 기준금리 결정 금통위는 2017년부터 1년에 여덟 번 열리고 있다. 3·6·9·12월엔 없다. 이를 앞의 이벤트들에 대입해 보면 사실상 내년 상반기는 통화정책 휴지기나 마찬가지다.
그나마 최근 높은 물가상승률과 가계부채 및 자산가격 급등에 따른 금융불균형 대응으로 2011년 1월과 같이 연초 금리인상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한은 역시 추가 인상을 시사하고 있는 만큼 시장에서도 내년 1~2월 중 한번은 추가 인상이 단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그 이후 행보다. 떠난 이 총재를 대신해 남은 금통위가 이 같은 숙제를 풀어야 하는 과제를 떠안을 수밖에 없다. 현재로서는 이 총재가 언급했던 일부분을 발췌할 수밖에 없게 됐다. “경제적인 고려”를 최우선으로 하되 “정치 일정이나 정치적인 고려”는 최소화하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