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관련 협회에 자리 꿰찬 금융관료들
금융사 유착으로 금감원 영향력 떨어져
정부, 시장 개입 말고 민간 자율권 확대
소비자 보호 위해 금융 감독기구 키워야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에게 인터뷰를 처음 요청한 것은 지난 11월이다. 그는 불과 몇 개월 전까지 금감원 수장을 지냈던 본인이 언론에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고사했다.
본지는 금융감독체계 개편 필요성과 올바른 금융산업 발전 방향을 논할 시기라고 판단했다. 갈수록 다변화하는 금융시장에서 반복되는 ‘규제 완화 후 금융사고 발생’을 더는 묵과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윤 전 원장은 이 같은 취지에 공감했고 이달 7일 서울 모처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했다. 윤 전 원장과의 인터뷰는 △금융감독체계 개편 방향 △금융관료·금융지주사의 권력화 △올바른 금융산업 성장방안 세 가지 테마로 이뤄졌다. 약 2시간에 걸쳐 진행된 인터뷰 동안 윤 전 원장은 정부 개입 없는 금융시장 조성과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서는 금융감독체계를 반드시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윤 전 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금융감독체계 개편이 이뤄져야 하는 이유는.
“계속되는 금융사고·사태의 주원인은 정부의 금융산업진흥정책 때문이다. 금융감독을 이로부터 독립시켜야 ‘감독강화-규제완화-책임혁신-금융발전’이 가능하다.”
- 금융감독체계 개편과 관련한 현재 논의 분위기, 과거와 달라진 점은.
“대체로 큰 그림에서 다르지 않다. 다만, 그 사이에 사모펀드 사태를 또 한 번 겪었다. (금융감독체계를) 미루고 안 하다 보니 또 한 번의 사태가 났다. 이번에도 개편을 안 하면 언젠지 모르지만, 언젠간 어떤 일에 의해 이런(사모펀드 사태) 유사한 문제가 또 생길 수 있다. 그러니까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
- 현 체계인 ‘단봉형(통합형)’을 확대할 경우 장단점은.
“통합형도 할 수 있으면 좋다. 그러나 통합형으로 하면 당장 견제가 많이 들어올 것이다. ‘금감원이 왜 커져?’라는 식일 것이다. 단일형은 혼자 권한을 다 가지고 있다. 금융사 입장에선 검사 오는 개체 수가 두 개에서 하나로 줄어들어서 좋을 수 있지만 대신 셀 수 있다. 이런 감독체계 개편 조직 체계도 문제지만 새롭게 탄생하는 감독기구가 어떤 수단, 어떤 정보력을 갖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견제가 너무 지나치게 들어오는 건 제 역할 하는 데 문제가 있을 수 있다.”
- 현재 상황에서 ‘대봉-소봉형’, ‘쌍봉형’ 중에서 적절한 유형은.
“소봉형(소비자 보호기구만 분리)이 상대적으로 수월하다는 거다. 현실적으로 쌍봉형(건전성 감독+행위규제 감독 분리)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니다. 소봉형은 간명해 보이나 소비자 보호 강화 취지를 살리는 데 다소 제한적일 가능성도 있다. 개혁, 혁신은 어느 시점에서 무 자르듯이 잘라야 한다. 새롭게 뭔가 하겠다고 하면 전문가팀을 짜서 거기서 밀도 있는 분석 내지는 검토 논쟁을 거쳐야 한다. 개인적으로 쌍봉형이 괜찮다고 생각한다. 다만 어떻게 업무를 나누고 접근하느냐, 만만한 이슈는 아니다.”
- 감독체계개편에 따른 감독-검사 실효성은.
“책임소재가 분명해지는 장점이 있다. 금융위와 금감원이 단일기구이면 DLF 사태 발생 시 규제 완화 때문인가, 감독 부실 때문인가를 놓고 싸울 필요가 없다. 현재 금융위는 산업정책을 추진하면서 감독수단의 견제가 산업정책의 역효과를 막기 위해 감독도 원천 배제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비근한 예가 사모펀드 규제 완화와 머지포인트 규제 미확정 등이다. 이론에 반하는 행위다.”
- 사모펀드 사태는 어떻게 진행됐을까.
“애당초 행위규제 감독기구 쪽이 (규제 완화) 의사결정을 할 때 할 거냐, 말 거냐 라는 얘기를 검토하게 될 것이다. 책임이 단일화돼 있으니까 잘못되면 책임이란 감독장치를 조건으로 붙여 놓고 문을 열자(규제 완화)는 식으로 일이 진행됐을 것이다. 그러면 산업의 발전은 그렇게 빠르게 일어나진 않았을 거다. 단기간에 급성장해 문제가 생기는 일은 어쩌면 없었을 것이다. 속도가 다운된 만큼 주도하는 입장에서도 책임감 있게 했었을 거다. 문제는 이렇게까지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네들 책임이니깐 수습 과정도 이렇게 길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 쌍봉형으로 감독체계개편이 이뤄졌다면 가계부채를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
“쌍봉형으로 가면 건전성과 시장규제를 어느 쪽이 맡아야 하는지 논의할 사안이 많이 생길 것이다. 과거 논문 쓸 때도 고민을 많이 한 부분이다. 공통관심사라는 걸 지정한다. 건전성 감독기구도 관심을 가지고 있고 행위규제 기구도 관심을 두는 사안들을 정의한다. 그중 하나가 가계부채다. 주를 어디로 할 거냐. 시스템 리스크도 있고, 판매 관련된 문제도 있다. 이런 것은 금융안정협의회(윤석헌 전 원장 논문에서 제시한 협의체)로 올려서 결론을 내도록 할 수 있다. 만약에 두 기구 간의 문제가 있다면 건전성 감독기구한테 비토권(거부권)을 줄 수 있다. 시스템 리스크를 봐야 할 책임이 중요한 이슈일 수 있기 때문이다. 비토권을 건전성 감독기구에 주자는 틀을 기본으로 하고 분류 작업을 해야 할 것으로 본다. 백점짜리 답을 가져오지 못하겠지만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보완해 나가면서 한국형 쌍봉형 제도가 시작되는 것이다.”
- 금융위와 금감원의 책임소재 공방도 있는데
“DLF 관련 규제완화 논의 단계서 금감원 담당자들을 배제했다. 결국 국민이 보는 시각은 (DLF 사태가) 집행부서인 금감원에 모든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 보이는 것에 불과하고 실제는 금융위 정책에 의해서 대부분 좌지우지되는 상황이다. 두 개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 산업정책과 감독을 분리해야 한다.“
- 금융감독기구에 대한 감독과 견제는 어떻게 구현해야 하나.
“영국 같은 데는 공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공무원이다. 공권력을 행사하는 포지션에 들어가면 공무원이다. 고시를 꼭 붙어야 하는 게 아니라 그 역할을 하면 된다는 선진화된 공무원의 개념 아니겠나. 책임성 부분에서 중요한 건 감독자를 모니터하는 사람은 또 누가 하느냐다. 그건 끝도 없다. 책임성 조항을 붙여서 국회에 보고하고, 금감원장은 청문회 하고, 감사원 감사를 받는 거다.”
- 금융위의 필요성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감독체계 유형의 분류보다 앞서 더 중요한 것은 금융위-금감원 관계를 정리하는 게 우선돼야 한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무조건 조직을 통합해야 한다. 금융위는 금융감독정책과, 금융산업정책 두 개의 기능이 한조직에 있다. 감독정책과 금감원의 집행기능을 합하고, 산업정책은 기재부가 가져가든지 해야 한다.
산업정책을 많이 줄여야 한다. 동시에 감독은 커야 한다. 산업정책, 감독정책을 담당하는 금융위에서 하는 일을 금감원이 건드리지 않는 일은 법령 제·개정 정도다. 이것 빼고 금감원에서 안 하는 일이 없다. 여기에 산업은행 정책금융도 금감원이 못 건드리게 했다. 말이 안 된다. 산업은행도 금융회사인데 똑같은 잣대로 재야 한다. 그래야 한국이라는 그릇에 담겨 있는 모든 위험을 동일한 잣대로 잴 수 있다. (지금 상태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앉아 있는 꼴이다.”
- 금융위, 금감원 견제 역할도 있는데.
“금융위가 금감원을 견제해야 한다는 생각은 조직이기주의에 불과한 아전인수격 변명이다. 금융감독의 독립성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나온 말이다. 금감원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금융위가 자신들 뜻대로 금융감독을 주무르겠다는 주장이다. 2014년과 2019년에 국제통화기금(IMF)도 금융부문평가프로그램(FSAP)에서 금융정책이 산업정책으로 기울어졌다고 지적하면서 금감원의 독립성 강화를 지지했다.”
- 현 금융감독 기조는 사전감독 강화인데.
“사후감독을 안 한다는 건 감독의 ‘ㄱ’자도 모르는 얘기다. 감독을 하는 게 금융사들이 미워서 때리는 게 아니다. 서비스를 국민한테 할 생각을 해야지 금융사에 할 생각을 하면 안 된다. 그런 상황에서 감독은 튼실하게 해야 하고 그래서 감독을 튼실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감독 시스템이 튼튼하게 자리 잡으면 국민이 믿고 신뢰가 간다. 교통 위반 단속을 강화하면 교통 위반을 안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게 하면 신뢰가 생기고 그러면 규제도 완화할 수 있다.”
- 금융관료들이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는 사례는.
“금감원 업무를 뺏어가는 것이다. 비근한 예가 소비자보호처를 만들 때 금융교육을 금융위 업무로 하려고 했다.”
- 금융관료들의 레거시가 금융산업을 저해한다는 현상은.
“최근에 은행연합회장을 중심으로 금융 관련 협회들이 금융관료들로 도배됐다. 금융회사와 금융 관료 간의 유착관계가 금융권을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카르텔 같은 걸 형성하고 가는 것이다.
포획된 금감원은 독립성을 발휘하기 어렵고 업무추진도 소극적으로 돼 인적자원 활용도를 낮추는 결과를 낳았다. 최근 금감원 종합검사에서 지적된 삼성생명의 계열사 지원 제재가 지연되고, 사모펀드 사태에서 금융회사 CEO 제재가 늦어지고, 예금보험공사가 우리은행 CEO를 재선임한 것을 비근한 예로 볼 수 있다.”
- 금융지주사들의 영향력 확대 현상 방증과 원인은.
“금감원 제재에 대해 소를 제기하고 반년 넘게 금융사 CEO 제재가 지연되고, 제재받은 일부 CEO는 연임에 성공했다. 이 가운데 6개 금융협회장이 자율규제를 요청했다. 이 같은 현상의 원인도 금융위의 산업진흥정책 선호에서 찾을 수 있다. 금융지주사 시장 점유율 경쟁과 더불어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감독기구를 압도하려는 시도다. 마치 ‘할머니(금융위)가 금융개혁 혼연일체 등으로 어머니(금감원, 감독기구)를 제압하고 손주(금융사)를 곱게만 키우다 보니 경쟁력 없고 나쁜 버릇만 든 꼴’이다.”
- 금융정책을 다루는 기구는 필요하지 않나.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더는 금융에 개입하지 말아야 하고 따라서 산업정책을 위한 조직은 불필요하다고 본다. 금융정책은 가급적 줄여서 민간에게 자율권을 많이 허용하고 그 대신 금융 안정 훼손, 질서위반, 소비자 피해 발생 등에 대해서는 엄벌할 수 있도록 감독기구가 커져야 한다. 대부분의 금융선진국이 이런 방식이다. 이렇게 해야 소위 민간의 ‘책임 혁신’이 가능해질 수 있다.”
- 기재부의 금융정책 방향 방점은 어떻게 둬야 하나.
“기재부는 금융을 정책수단으로 고려하지 말고 금융중심지 전략 추진 등 민간을 위해 시스템과 인프라 구축에 집중해야 한다. 기간산업 구조조정은 산업부 주도로 추진하고 정책금융은 자영업자 지원 등을 포함해 중소기업부 주도로 추진해야 한다. 재정을 다루는 기재부 입장에서는 포용금융, ESG 등을 직접 담당하고 확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