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영양실조로 죽은 사람이 345명, 외환위기 당시였던 2000년에 370명을 기록한 이후 20년 만에 300명을 넘겼다. 올해 보건·복지·고용 분야에만 211조70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 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일(10월 26일) 112주년을 사흘 앞두고 안 의사의 조카며느리 박태정 여사가 가난과 병마 속에 향년 91세로 생을 마감했다. 고인의 유족은 경제적 여력이 없어 빈소를 차리지도 못했다. 민주화 운동의 유공자들을 후손까지 예우하자며 특별법이 발의됐던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다.
지난해 3월 코로나가 번지자 학교는 문을 닫았다. 학생이 없으니 학교 매점도 영업이 중단됐다. 잠시면 끝날 줄 알았는데 20개월이나 매출액 0원을 기록했다. 그런데 학교 매점은 재난지원금 대상에서 빠졌다. 교육청의 행정명령이행확인서가 발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생 등교는 제한했으나 매점의 집합금지명령은 안 내렸다는 것이 이유였다. 국민들의 어려움을 덜어 준다며 55조 원의 재난지원금을 푼 나라에서 일어난 황당한 일이다.
일이 안 되면 우리는 흔히 사람과 돈 타령을 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3년간(2017~2020) 행정부 공무원은 109만7747명으로 9만1602명이 늘었다. 반면 김영삼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에 이르는 20년간 공무원은 8만6991명이 늘었다. 과거 20년간은 공무원이 연평균 4300명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최근 3년 동안은 연평균 3만 명 이상 공무원이 증가했다.
국가 예산도 사상 첫 400조 원을 넘긴 2017년에서 5년이 지났을 뿐인데 내년에는 604.4조 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쯤 되면 죽비로 맞을 법한 정부의 낮은 경쟁력은 사람과 돈의 부족이라는 통상적인 이유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한 나라의 분배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를 보면 정부의 낮은 효율이 설명된다. 정부의 재정정책이 개입된 후 지니계수가 개선된 정도를 보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에 가깝다. 다른 국가 대부분의 개선율이 30%를 넘는데 한국은 2016년과 2019년 각각 12%, 16%에 불과했다. 양극화를 해소하자며 확보된 복지 예산이 정치논리에 따라 움직였으니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나라도 가계도 구멍난 낮은 효율을 빚으로 때운다. 우리나라는 35개 주요 선진국 가운데 경제규모 대비 국가채무 증가 속도가 가장 빠를 것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이 예측했다. 가계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위에 올랐다고 국제금융협회(IFC)가 밝혔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가계부채 규모가 GDP, 곧 경제규모보다 더 큰 지구촌 유일의 나라가 됐다. 덩달아 미래의 전망도 암울해졌다. 우리나라의 2030~2060년 연간 잠재성장률은 0.8%로 떨어져 세계 최하위권이 됐다. 미래가 불안한 청년들은 연애, 결혼, 육아가 어려워져 출산율도 세계 최하위인 0.8로 떨어졌다. 1인당 국민소득이 6만 달러를 넘어선 미국보다 경제활력이 떨어지고 40년간 만성적 침체에 시달리는 일본보다 더 침체된다는 얘기다.
만해 한용운(1879~1944)은 100년 전 ‘한용운 공소공판기’에서 망국에 대한 자기책임론을 설파했다. 만해는 “어떤 나라든지 제가 스스로 망하는 것이지, 남의 나라가 남의 나라를 망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부패한 정치와 현대문명에서의 낙후를 망국의 원인이라 했다. 그리고 위정자와 민중 모두에게 그 책임을 물었다.
정치의 계절이 왔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정치가 바뀌어야 할 때다. 주요 7개국(G7)이 10개국(G10)으로 확대되면 우리가 1순위가 될 것이라는 환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다. 당장 일하고 집 사고 돈 버는 생활이 아쉽다. 예고된 미래의 낙오에서 벗어나려면 효율을 좀먹는 제도를 개혁하고 성장 잠재력을 회복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한강의 기적은 한강수보다 많은 땀을 흘리며 얻어진 것이다. 이것이 다가올 대통령 선거가 우리 경제에 던지는 화두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