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12·12 사태를 지켜보던 북한은 불안정한 우리 정세와 신군부의 입장을 떠보기 위해 1980년 1월 남북총리회담을 제의하였다. 1980년 10월 제6차 당대회를 통한 김정일 권력승계를 앞둔 시점에서 정치적인 수요와 평화 대화공세의 목적도 있었다. 한편으로 북한은 올림픽 유치와 서울 아시안 게임을 방해하기 위해 폭력적 방식을 동원하기도 했다. 1983년 10월 미얀마 폭탄 테러사건, 12월 다대포 무장침투 사건, 1987년 KAL기 폭파사건 등은 주지의 사건들이다. 물론 미얀마 테러 사건 이후 국제적 비난 여론을 의식하여 1984년 9월 우리측에 수재 물자를 제공하겠다고 함으로써 남북관계의 해빙 국면이 잠시 조성되기도 하였다. 그해 11월 남북경제회담을 시작으로 적십자회담·국회회담·체육회담 등 여러 남북대화가 재개되고 1985년 9월에는 분단사상 최초로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 및 예술공연단 교환방문이 성사되는 등의 관계 진전도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부로 갈수록 소련과 동구권의 개혁개방이 가시화되고 탈냉전의 기류 속에 다급해진 북한은 남북관계에서 수세적인 입장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다.
필자가 1980년대 남북관계를 새삼 꺼내려는 게 아니다. 역사의 진행과정에서 올림픽과 연관된 남북관계를 재조명하려는 것이다. 1980년대 남북관계의 중심에는 올림픽이 있었다. 서울 올림픽은 동서화합의 장으로서 곧 맞이할 냉전의 종식과 평화공존 시대 개막의 예포 역할을 하였다. 북한의 온갖 테러와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서울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로 우리는 한반도 평화이슈를 선점하고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확보해 나갈 수 있었다. 북방정책은 이러한 우호적 흐름 속에서 전개된 것이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30년이 지난 2018년, 북한의 핵개발로 평화를 위협받던 우리는 평창 동계올림픽 카드를 꺼내 들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치러냄으로써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해빙무드를 이끌어냈다. 2018년에만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고 9·19 군사합의를 이끌어낸 것은 동계올림픽을 통해 평화의 주도권을 확보했기 때문이었다. 전직 대통령이 체결한 6·12 북미 간 싱가포르 공동선언을 바이든 미 행정부가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우리가 주도한 평화 프로세스의 중요한 결실임이 분명하다.
다시 내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개최된다. 비록 우리가 주최하는 올림픽은 아니지만 올림픽의 평화·화합 정신이 다시 한반도에 드리워졌으면 한다. 문재인 정부가 마지막으로 공을 들이고 있는 종전선언이 베이징 동계올림픽과 직접 연계된 것은 아니지만 평화와 화합의 제전에 한반도 평화 공존의 중요성이 다시 전 세계로 발신되는 계기가 마련되면 좋겠다. 물론 개최국의 입장이 있고 참여하는 국가들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반드시 의도한 대로 되지는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올림픽을 통해 최근 다시 격화되고 있는 미중 갈등도 새로운 접점을 모색하고 북한이 다시 비핵화 대화에 나오는 등 평화와 화해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끝임 없는 대화이다. 역사 속에서 이미 입증된 결과가 있다면 그 역사를 다시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더 나은 역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역사는 진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