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의 원견명찰(遠見明察)] 팬데믹의 시간을 넘어

입력 2021-11-16 20:30 수정 2021-11-16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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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 현대일렉트릭 사장

코로나19 팬데믹의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발생한 지 2년이 다 된 지금에서야 우리는 가장 어려웠던 고비를 넘어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처음 시작될 때 정체를 몰랐기에 느꼈던 막연한 공포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완벽하게 없애지는 못할지라도 ‘백신과 치료제로 달래가며 같이’ 지낸다는 의미에서 ‘위드 코로나’라는 신용어가 모두에게 익숙해져 가고 있는 시간이다. 이러한 위기를 겪으면서 인류는 많은 것을 배우고 새롭게 나아간다. 그것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시스템의 대변혁을 의미한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지금까지의 정책을 평가하고 누구에게 국가의 운전석을 맡길 것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있다. 이번 팬데믹을 통하여 우리는 과학기술과 전문가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도덕적이고 능력 있는 정부만이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담보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새 정부는 국민과 소통하고 국제 사회와 공조해야만 한다는 점도 분명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우선해야 할 것은 과학기술의 중요성과 진정한 전문가에 대한 믿음일 것이다. 과학기술은 이번 팬데믹 상황에서 백신과 치료제라는 최고의 선물을 인류에게 제공했다. 백신의 개발은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인류를 구하겠다는 과학기술자들의 끈기와 노력의 산물이다. 이러한 노력은 축적된 데이터와 그것을 분석하는 컴퓨터 기술 덕분에 훌륭한 성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더불어 이것을 뒷받침하는 거대 자본의 투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세계적인 제약사의 회수 가능성이 불확실한 대형 투자가 없이는 백신과 치료제의 개발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의 고민은 시작된다. 투자한 자본의 대가를 보상하기 위해서는 가격은 비싸져야 하고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백신의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백신이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제공되지 않는다면 팬데믹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시장을 움직이게 하여 백신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백신이 신속하게 골고루 분배된다면 세계 경제는 5~6% 성장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성장률은 3%로 낮아질 것”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는 인본주의적 함축성을 갖는다. 백신의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백신 보급의 평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렇게 과학기술은 인간의 문제를 다루는 영역이다.

두 번째는 국가의 능력에 관한 성찰이다. 언젠가 ‘사라진 언어, 경쟁력’이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경쟁력이라는 화두가 사라져 가는 것을 걱정하고 그 중요성에 대하여 생각을 정리해 본 것이다. 공정이라는 가치는 당연히 존중되어야 하지만 능력을 무시해서는 국가의 발전을 이루기가 어렵다. 능력은 개인 개인을 뛰어넘어 국가 단위의 경쟁력일 때 더욱 중요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 마스크를 구하지 못하여 줄을 서고 요일제로 배급을 하던 시간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병의 실체를 몰랐었고 마스크의 제조 및 유통 구조도 잘 모르고 시행착오를 했던 시절이었다. 외국의 백신보다 우리의 치료제가 먼저 나올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대한민국 경쟁력의 실상이라는 점에서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한국 경제 고속 성장의 주역이면서도 새로운 시대의 대안으로서는 국민의 관심 밖에 있었던 제조업의 중요성도 지켜봐야 한다. 제조업 기반이 없는 서비스업만으로는 국가의 경쟁력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점은 국민과 소통하고 국제 사회와 공조하는 것이다. 우리는 방역이라는 명분으로 국민의 많은 자유를 제약하고 협조를 요구했다. 결과적으로는 또다시 사회적 약자의 희생을 토대로 위기를 넘어온 것은 아닌지를 진지하게 뒤돌아봐야 한다. 소상공인이 아프다고 비명을 지를 때 대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그들의 인내만을 요구한 것은 아닌지도 다시 평가해야 한다. 세계적인 백신 개발 논의 중에 세계 10위 경제 규모에 걸맞게 역할을 했는지도 궁금하다. 우리는 팬데믹의 파도를 건너오면서 또다시 민족의 저력을 확인하였다. 그 민족의 저력이 평범한 보통 국민의 저력이었으나, 국가 주도층의 저력은 아니었다는 통렬한 반성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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