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우울 스크리닝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만난 노모도 같은 문제로 고민이 많았다. 딸과 노모가 나누는 대화 속에서 딸에게 경계성 장애가 있다는 걸 직감하고 조심스럽게 장애 여부를 물었다. 노모는 장애가 있기는 하나 장애등급은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더 걱정이 많다는 노모는 젊을 때와 달리 이제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고 힘에 부친다고 한다. 팔순의 노모가 사십 줄을 넘긴 딸을 챙기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것이다. 우울감이 높은 데다 고령인 노모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힘드셨겠다”는 말 한마디에 노모의 눈시울이 금세 붉어지며 그동안 쌓인 응어리가 봇물 터지듯 쏟아진다. 노모가 고충을 토로하자 옆에 있던 딸은 듣기 싫은지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며 자신은 장애인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두 사람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기에 중재를 하고 싶었지만 딸이 진정되길 기다리는 것 외에는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노모의 가장 큰 고민은 어린 나이도 아니고 지금까지 잘 지내왔는데, 지금이라도 장애등급을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하는 문제라고 한다. 사후에 남겨질 장애 자녀 걱정 때문이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남겨진 자녀에게 부탁하기도 짐이 될까 마음이 편치 않다. 장애 자녀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하는 고민이다. 부모들은 노력하면 나아질 것이란 기대와 희망으로, 또 장애인이라는 낙인이 찍힐까 두려워 장애진단을 미루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모녀와 같이 ‘경계성 지능’을 가진 장애 자녀들은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교육받을 수 있는 제도나 지원이 부족한 현실이다 보니 안타깝게도 대부분 인지능력이 저하돼 결국 지적장애의 경계 안으로 들어온다. 학교라는 제도권 안에 있을 때는 그나마 사정이 좀 낫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 이들은 할 일도 갈 곳도 없다. 이런 연유로 장애 당사자들이 겪는 아픔도 크다. 장애와 비장애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이만이 느껴야 하는 소외감, 그로 인한 슬픔은 가족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부모는 부모대로, 장애 자녀는 자녀대로 우울감이 높을 수밖에 없고 한 번쯤 극단적 선택을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경·중증 장애를 막론하고 성인이 된 장애 자녀를 돌보는 일은 온전히 가족의 몫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고령의 부모가 장애 자녀를 돌보기란 경제적으로나 체력적으로 버거운 일이다.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은 한결같이 장애 자녀를 남겨 두고 부모 모두가 세상을 떠나면 내 자식은 누가 평생 돌봐주나 하는 것이 죽기 전에 해결해야 할 숙제라고 말한다. 장애 자녀와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하는 부모들의 사연이 심심찮게 들려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자녀보다 하루라도 더 살아서 끝까지 돌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 세상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의 소원, 이제는 우리 사회가 나서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 “나는 장애인이 아니에요.” 그 말이 아직도 귓가에 선하다.
김현주 서울시 강서구보건소 사회복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