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이후의 추세를 비교하면 한국 압승?
일단 사실부터 확인해보자. 아래 <그림>은 미국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 500지수(이하 ‘S&P500’)와 KOSPI의 성과를 비교한 것인데, 한눈에 보더라도 KOSPI가 압도적인 성과를 기록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연 환산복리 수익률 기준으로 보면, KOSPI에 투자하면 8% 정도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반면 S&P500은 6%에 그쳤다. 2001년 1월에 각 시장에 100만 원을 투자했다고 가정하면 현 시점에서 한국은 480만 원, 미국은 337만 원으로 큰 차이를 보인다. 즉, 한국 증시가 항상 미국보다 부진하다는 식으로 주장하기는 어려우며, 적어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는 한국 증시가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던 것으로 보인다.
2008년 이후 미국 증시의 강세가 출현한 이유는?
그럼 왜 최근 들어 미국 증시의 강세가 지속되는 걸까? 이 의문에 대한 첫 번째 ‘답변’은 성장률의 격차가 되겠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이 미국보다 훨씬 나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2009~2021년 한국 경제는 연 평균 2.8% 성장한 반면, 미국은 1.8%의 성장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즉 한국 증시는 더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비해 부진한 성과를 거둔 것이다.
그럼 어떤 요인이 두 증시의 승패를 갈랐을까? 여러 후보가 제기될 수 있지만 ‘달러가치’의 변화가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아래 <그림>의 파란 선은 미국 증시 대비 한국 증시의 상대적인 성과를 보여준다. 즉, 파란 선이 상승하면 한국 증시가 강세를 보인 것으로, 반대로 파란 선이 하강하면 미국 증시가 한국에 비해 더 나은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한국 증시의 상대적인 성과는 미국 달러의 가치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음을 금방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001~2007년처럼 달러의 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할 때에는 한국 증시가 강세를 보이지만, 2011~2016년처럼 달러가 강세로 돌아설 때에는 미국 증시의 강세가 두드러지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직관적으로 이해되는데, 글로벌 주식시장을 대상으로 투자자금을 집행하는 연기금이라면 달러 강세 국면에 한국 등 신흥시장(EM, Emerging Market)에 투자할 동기가 약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이비리그 대학의 기금 관리자 입장에서 달러가 강세를 보일 때 ‘환차손’의 위험이 있는 한국 주식에 투자를 꺼릴 것이다.
외환위기에 대한 공포도 신흥시장에 대한 투자 기피로 이어져
앞에서는 ‘환차손’에 대한 공포가 달러 강세 국면에 신흥시장 투자를 기피하는 원인이라고 지적했지만, 문제는 생각보다 더 복합적이다. 일반적으로 달러는 경기가 나빠지는 불황에 강세를 보이는 경향이 있지만, 2021년 10월 미국 비농업 부문 신규 고용이 무려 53만 명에 이르는 등 경기 여건은 매우 우호적이다. 그렇다면 왜 달러의 강세가 출현했을까?
그 이유는 미국 시장금리의 상승에서 찾을 수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 참가자의 입장에서 미국 달러는 ‘불황에 강세를 보이는’ 안전자산이기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나 2020년 코로나19 쇼크 같은 때를 대비해 항상 보유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미국 자산의 수익률이 급격히 높아진다면? 그리고 그 자산이 미국 정부가 발행한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국채라면 어떻게 될까?
아마 투자자들은 달러 자산의 비중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며, 이 노력은 자본시장이 취약한 일부 신흥국 경제에 큰 악영향을 미치곤 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의 터키로, 미국 시장금리가 급등하는 가운데 달러에 대한 터키 리라화 환율이 급등한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물론 한국은 터키보다 월등히 많은 외환보유고를 가지고 있으며, 또 국민연금과 한국투자공사 등의 연기금이 수천억 달러의 해외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외환위기의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그러나 터키 등 신흥국 경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질 때마다, 한국이 포함된 신흥시장 관련 펀드로의 자금 유입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선진국 통화에 대한 분산투자 전략, 고려할 필요 있어
따라서 한국 증시의 투자자들은 항상 달러의 방향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물론 필자의 예측이 빗나가, 미국 시장금리가 안정을 되찾는 가운데 달러가 오히려 약세로 전환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다만, 불확실한 미래에 베팅하기보다 달러 강세 위험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이른바 통화분산 전략에 대해 고민해 보는 게 어떨까 싶다. 예를 들어 한국 원화 표시 자산뿐만 아니라, 미국 달러 혹은 일본 엔화 등 다양한 선진국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면 달러가치의 변화에 상관없이 안정적인 성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