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소비자물가가 작년 같은 달에 비해 3.2% 급등했다. 2012년 1월(3.3%) 이후 9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국제 유가가 치솟으면서 석유류 값이 크게 오른 영향이 컸다.
통계청이 2일 발표한 소비자물가 동향에서 10월 소비자물가지수가 108.97(2015년=100)을 기록했다. 지난 4월부터 9월까지 2%대 중반의 상승률을 보이다가 10월에 3%를 넘었다. 공업제품과 전기·수도·가스, 농축수산물, 공공 및 개인서비스, 집세 등 모든 물가가 뛰었다. 정부가 올해 연간 물가상승률을 2% 안팎에서 관리하겠다는 목표는 물 건너갔고, 2012년(2.2%) 이후 최고 상승률을 보일 전망이다.
특히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류 가격이 27.7%나 폭등하면서 공업제품 물가를 4.3%나 끌어올렸다. 전기·수도·가스는 1.1%, 농축산물은 0.2% 상승했고, 공공서비스의 경우 작년 10월 통신비 지원에 따른 기저효과로 휴대전화료가 올라 5.4% 상승률을 나타냈다. 개인서비스도 2.7%, 집세는 1.8% 올랐다. 소비자 구입빈도가 높고 지출비중이 큰 항목을 계산해 서민 체감물가를 보여주는 생활물가지수는 4.6% 치솟아 2011년 8월(5.2%) 이후 최고다.
문제는 앞으로 물가가 더 오를 요인들만 산적해 있다는 점이다. 산유국들이 증산에 소극적 입장으로 국제유가 상승세가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공급망의 병목현상도 단기간 내 해소될 전망이 어둡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는 가운데, 미국의 긴축 움직임이 본격화하면서 환율도 줄곧 오르는 추세다. 국내적으로는 코로나19 상황의 단계적 일상회복에 들어가면서 소비 증대가 예상된다. 정부도 소비를 살리기 위해 소비쿠폰 사업 등 돈을 풀고 있다. 수요 증가와 공급 차질에 따른 고물가가 상당 기간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이미 경기 회복이 더뎌지면서 물가가 계속 오르는 ‘슬로플레이션’(slowflation) 국면에 들어섰다는 진단도 나온다. 지난 3분기 우리 경제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0.3%에 그쳐 1분기(1.7%)와 2분기(0.8%)에 비해 크게 둔화했다. 국제유가와 원자잿값의 고공행진, 중국의 심각한 전력난에 따른 경기 후퇴, 국제 물류대란 등 하방요인도 중첩돼 있다. 경기 회복세가 꺾이고 다시 뒷걸음치면 스태그플레이션의 늪에 빠질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경기는 기대 만큼 살아나지 않고 물가에 비상이 걸렸다. 기준금리까지 오르면서 막대한 대출을 안고 있는 가계부담과 고통이 커질 수밖에 없는 비상한 상황이다. 대외 요인의 영향이 큰 물가상승에 마땅한 대책도 없는 게 현실이다. 그렇더라도 물가 폭등에 따른 민생의 충격을 줄이고 경기 회복세를 이어갈 수 있는 비상한 정책수단을 총동원하는 것이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최우선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