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비자원 “환급금만큼 삭감한 실손보험금 지급 하라=
31일 관 련업계에 따르면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는 지난달 소비자(신청인)가 A손해보험사(피신청인)를 대상으로 신청한 조정에 대해, 본인부담상한제에 따른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의 환급금만큼 삭감한 실손보험금을 지급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본인부담상한제는 건보가 2004년부터 의료비 부담 경감을 위해 시행한 제도로, 소득분위별 본인일부부담금 상한액 초과분만큼 돌려주는 것이다. 하지만 보험사들이 지급할 보험금에서 해당 환급금을 제하면서 갈등을 빚고 있는데, 한국소비자원은 소비자 손을 들어줬다.
결정문에 따르면 소비자분조위는 “본인부담 상한액 초과액에 대해 건보로부터 받은 환급금은 보험금 지급대상이 아니라는 피신청인(보험사)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보험사는 신청인에게 미지급 실손보험료를 지급하고 만일 지급을 지체하면 미급한 돈에 대해 갚는 날까지 연 6%의 비율의 지연손해금을 가산해 지급하라”고 밝혔다.
이어 “보험 약관 규정에 따라 환급 또는 환급 예정 금액이 궁극적으로는 신청인이 부담하는 비용이 아니라고 해도 국가가 국민의 과도한 의료비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도입한 본인부담상한제에 따른 환급과 신청인이 가입한 민간 의료보험에 따른 보험금은 법적 성격과 급부의 목적이 현저히 다르다”며 “이를 피신청인이 일방적으로 서로 상계하거나 지급을 지연하는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짚었다.
◇보험사 “실손보험금 지급 어려워”= 그러나 보험사는 실손보험금을 지급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피신청인 손해보험사 관계자는 “대법원 판례에 따른 보험사의 기존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답했다. 실제 금감원과 대법원이 중복보장은 ‘이득금지’가 위배된다며 보험사 손을 들어줬다. 해당 조정 건은 금감원에도 민원 신청을 했지만, 기각된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업계는 실손보험은 약관조항에 따라 본인부담상한제 초과금에 대해서는 미보상한다는 입장이다. 약관의 보상하지 않는 사항 제4조에 따르면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른 요양급여 중 본인부담금의 경우 국민건강보험 관련 법령에 따라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사전 또는 사후 환급이 가능한 금액(본인부담 상한제)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금감원 분조위(조정번호 2010-69호)나 대법원(선고 2015다246957)도 이미 실손보험은 ‘실제 부담한 의료비만 보장’하는 게 원칙이라고 판단했다. 본인부담금상한제로 의료비를 돌려받는다면, 이건 실제로 부담한 의료비가 아니라는 의미다.
◇보건당국 금융위 의견 엇갈려...피해는 환자에게= 보건당국과 금융당국이 엇갈린 입장을 내고 있는 사이 정작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은 환자들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민간 보험사들이 환급금의 규모도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환급금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될 경우 실제 지급 여부와 상관없이 보험금 지급을 미리 공제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자 입장에서는 환급금은 지급되지 않았는데 앞으로 발생할 환급금을 이유로 보험금을 지급받지 못하면 암이나 희귀질환 등 의료 비용이 많이 발생하는 중증환자들의 경우 당장 감당하기 어려운 의료비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거기다 미지급 보험금은 해마다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생명보험 17개사와 손해보험 13개사의 미지급 총액은 2017년 328억 원, 2018년 419억 원, 2019년 554억 원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문제는 올해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됐다. 고승범 위원장은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대해 “보험금 지급 이중지원문제로 이렇게 운영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소비자 불편 문제도 있어서 검토해보려고 생각하고 있다”면서 “공사보험협의회가 있는데 보험협회와 복지부 등과 상의해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