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가 한쪽 벽면에 붙은 사진이 시선을 잡아끈다. 사진은 아이의 표정을 가늠할 수 없도록 이리저리 구겨져 있다. 사진 하단에 적힌 문구로 사진 속 아이가 처한 환경을 짐작할 수 있다. “학대로 구겨진 상처는 쉽게 펴지지 않습니다.” 사진 속 아이를 통해 학대 피해로 숨진 정인이가 떠오른다.
해당 포스터는 ‘구겨진 마음의 상처’라는 주제를 담는다. 이제석광고연구소가 제작했다. 이제석 대표는 이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생후 16개월 된 입양아를 양부모가 학대해 숨지게 한 ‘정인이 사건’ 1주기를 맞아 비영리 광고를 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 번 구겨진 종이는 어떤 방법으로도 다시 완전하게 펴질 수 없다. 캠페인의 모토 역시 여기서 출발했다. 이 대표는 “일그러진 어린이들의 표정도 마찬가지”라며 “어린 시절 아동기에 겪은 정신적 상처가 성인이 되어서도 흉터처럼 남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서울 시내 주택가에 게릴라식으로 사진을 붙이며 해당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이의 얼굴을 담은 사진이 구겨지는 과정을 담은 gif 형식의 영상도 제작했다. 오로지 재능기부 형태로 이뤄졌다.
이제석광고연구소는 공익광고를 제작하는 전문 광고 연구소다. ‘정인이 사건’의 무게감을 크게 인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대표는 “광고는 노출이 될 때 의미가 있다”며 “어려운 문제일지라도 사람들이 쉽게 기억하는 방식으로 제작하려고 방식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2019년 벌였던 ‘담배꽁초 처리문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재고 설치미술형 퍼포먼스’를 예로 들었다. 이 대표는 “단순히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말하는 것보다 7만 개의 담배꽁초를 산처럼 쌓았을 때 주는 효과가 더 크다”며 “내 눈앞에 있는 7만 개의 담배꽁초를 본 사람은 평생 잊지 못하듯, 구겨진 아이의 얼굴을 본 사람도 평생 기억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해당 캠페인을 기본으로 한 다양한 공익광고를 구상하고 있다. 이 대표는 “아이의 구겨진 얼굴이 아동 학대, 학교 폭력 등 다양한 캠페인으로 해석될 수 있다”며 “한 캠페인을 10년, 20년씩 하는 외국처럼 ‘구겨진 마음의 상처’를 콘셉트로 한 공익 광고를 계속해서 또 하나의 ‘밈’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