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춘욱의 머니무브] 헝다 사태가 ‘중국발 금융위기’로 번지지 않은 이유

입력 2021-10-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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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리서치 대표

최근 중국의 거대 부동산 회사 헝다(恒大)의 파산 리스크가 부각되며 아시아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렸다. 참고로 헝다는 약 3000억 달러의 부채(2조 위안)를 짊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발행 채권 가치가 80% 이상 폭락했으니 변동성이 높아진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9월 말을 고비로 조금씩 변동성이 줄어들고, 또 반등이 시작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헝다 사태의 원인, 그리고 향후 전개과정을 예상해보자.

헝다의 성공 이유는?

일단 다른 여러 이야기는 제쳐 두고, 헝다가 그토록 급속한 성장을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여러 요인이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저금리 혜택 때문이었다. 아래 <그림>은 미국 전미경제분석국(NBER) 보고서에 포함된 것으로, 파란선으로 표시된 중국 국영기업(SOEs)은 1990년대 말부터 최근까지 3~4% 수준의 금리로 돈을 빌린 것을 알 수 있다. 반대로 가장 위에 주황색 선으로 표시된 민간 법인기업(LPOs)은 7% 이상의 금리 부담을 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연 평균 8% 내외의 경제성장을 오랫동안 기록한 나라에서, 3% 전후의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 큰 이익이 된다. 주택 가격과 명목소득의 비율(PIR, Price-to-Income Ratio)이 일정하다고 가정하면, 주택 가격은 기본적으로 소득이 늘어날수록 상승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기업이나 가계는 주택을 사 두기만 하면 손쉽게 돈을 버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특히 최근 선전이나 베이징 등 중국 대도시의 PIR가 46배에서 42배 전후까지 상승했다는 것을 감안할 때, 돈을 빌려 토지나 주택을 구입한 기업들은 엄청난 이익을 누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헝다가 2010년 광저우 축구단(Guangzhou FC)을 인수한 후 세계적인 스타를 영입해 아시아 챔피언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부동산 투자를 통해 벌어들인 엄청난 자금력 덕분이었다.

헝다는 왜 무너졌나?

밝기만 하던 헝다의 앞날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 것은 2016년부터이다. 2016년 말, 중국 정치국은 “집은 투기가 아니라 살기 위한 것”이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발표했는데, 이런 발언이 나온 것은 중국 부동산 가격이 낮은 금리에 힘입어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함에 따라 국민들의 불만이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슬로건의 발표와 함께 이른바 ‘그림자 금융’으로 알려진 은행 이외의 기관들이 대출해 주는 일을 엄격하게 금지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지방정부도 당국 조치에 호응해 부동산 개발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중국의 하와이’로 불리는 하이난 섬에서는 2년 실거주 요건을 채우지 않으면 주택을 구입할 수 없게 되었으며, 주택 구입 후 5년 이내에 주택을 매각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변화 속에서 헝다의 위기가 시작되었다. 헝다는 하이난 섬의 해변에 두바이 스타일의 인공섬을 건설해 최고급 호텔을 유치하는 중이었기에, 정부의 규제 강화로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헝다그룹이 Sunny Peninsula 등 새로운 스타일의 저렴한 주택 공급에 나선 것도 정부의 기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이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코로나 쇼크가 조금씩 진정되던 2020년 11월, 중국 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 궈수칭 주석은 부동산을 중국의 안정을 위협하는 “가장 큰 회색 코뿔소”라고 지칭하는 등 부동산 회사의 부채 문제에 본격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특히 2021년 3월 중앙 정책당국은 지방정부 재정이 토지 판매에 지나치게 의지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대체할 재원으로 재산세를 도입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치기에 이르렀다. 더 나아가 ‘1가구 1주택’ 규제를 피할 목적으로 이혼하는 일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한편, 은행에 부동산 담보대출을 줄이는 대신 제조업체에 대한 비중을 높일 것을 지시했다. 이 영향으로 국내총생산(GDP)에서 부동산 담보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10년 만에 처음으로 떨어졌다. 결국 헝다그룹이 막대한 부채를 갚지 못한 채 파산의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은 경영 실패보다는 정책기조 변화를 제때 파악하지 못한 탓이라고 볼 수 있다.

금융위기로의 전이 가능성, 대단히 낮아!

이상의 분석을 종합해 보면 헝다 위기는 결국 일종의 ‘정치’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980년대 초반 한국의 여러 대기업 집단이 갑자기 몰락했던 사례처럼, 집권세력의 변화 혹은 정책기조의 전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불운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중국 정책당국이 2016년 이후 지속된 저금리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는 한, 헝다그룹이 추진하던 여러 부동산 프로젝트가 ‘부실자산’으로 전락해 대출해 준 금융기관의 짐이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참고로 2016년 이후 중국의 예금금리(1년 만기)는 1.5%에 불과하며 대출금리도 3.5%로 동결되어 있기에 중국 정책당국이 ‘부동산 버블을 꺼뜨리기 위해 행동에 나섰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더 나아가 15~20%에 이르는 도시지역 근로자들이 부동산 및 건설 분야에 고용되어 있다는 점도 중국 당국이 부동산 시장을 전방위적으로 억제할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이다.

따라서 헝다그룹 사태가 ‘투자심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임에는 분명하나, 금융위기로 연결될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한국 투자자 입장에서 헝다 사태는 매우 불쾌한 이슈다. 중국과 함께 신흥시장(EM, emerging market)으로 간주되는 상황에서, 중국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것은 수급 면에서 결코 좋은 뉴스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 빨리 한국 증시가 선진국 시장(DM, developed market)으로 분류되어, 중국의 정책 전환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신세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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