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헝다 위기 악화일로...달러채 이자 미지급에 미궁 빠져

“중국 당국, 헝다 파산 대비 지침…은행계좌도 관리”
중국 부동산개발업체·현지 은행·가전 등 쑥대밭
미국과 유럽 제조업·광산업도 영향권
헝다 분할·국유화·부채 구조조정 등 여러 시나리오 제시돼

▲중국 상하이 헝다센터 앞에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가 걸려 있다. 상하이/로이터연합뉴스

중국 민간 부동산개발업체 헝다그룹(영문명 에버그란데)발(發) 위기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모양새다. 달러화 표시 채권 이자를 제때에 지급하지 않으면서 이 회사의 파산 가능성이 부각하자 시장의 긴장감이 치솟고 있다.

헝다의 운명을 놓고 중국 정부의 방침이 여전히 불확실한 가운데 부동산개발업체와 현지 은행, 가전업체 등 중국 여러 기업 주가가 쑥대밭이 된 것은 물론 미국과 유럽 제조업체와 메이저 광산업체들도 영향권에 드는 등 헝다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고 25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이 진단했다.

헝다는 23일로 예정됐던 달러 표시 채권 이자 8350만 달러(약 984억 원)를 투자자들에게 지급하지 못했다. 같은 날 위안화 채권 이자 지급은 협상을 통해 해결하며 한고비 넘기는 듯했지만 달러 채권 이자 지급에는 실패하며 디폴트(채무 불이행) 우려가 다시 커지게 됐다. 이와 관련해 헝다 측은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최근 인민은행의 잇따른 유동성 공급을 두고 중국 당국이 헝다 구제에 나설 것이란 관측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장의 기대와 달리 중국 당국이 지방정부에 헝다의 파산에 대비하라는 지침을 하달했다는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가 나오면서 투자자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한 상황이다.

여기에 블룸버그는 중국 정부가 헝다 은행 계좌 관리 강화에 나섰다고 전했다. 이는 사회 불안을 막기 위해 회사가 은행에 있는 자금을 채권자들에 이자로 지급하는 등의 용도로 사용할 수 없게 하는 대신 미완성 주택 건설 프로젝트 완공을 우선시하도록 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제 투자자들의 관심은 23일 달러채 이자 관련 30일 유예 기간에 맞춰지게 됐다. 계약서상으로 예정일로부터 30일 이내까지는 이자 지급이 이뤄지지 않아도 공식적으로는 디폴트를 낸 것으로 간주하지는 않는데, 이 기간 어떤 변수와 중국 당국의 행보가 나올지 확실치 않다.

문제는 헝다의 디폴트 위기가 현실화할 경우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치지 않고 글로벌 금융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대다수 전문가는 헝다 위기가 ‘제2의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작다고 보고 있지만, 헝다가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전 세계 여러 산업과 시장 피해는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힘을 받고 있다.

당장 헝다가 30일의 유예기간 내 상황을 진정시키지 못하면 동종업계는 물론 일부 중국 시중 은행이 직격탄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부실 대출과 자산 감가상각이 급증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블룸버그는 정부의 지원책이 나온다고 해도 헝다 익스포저가 높은 핑안은행, 중국광다은행, 민생은행 등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헝다 사태가 최악으로 치닫게 된다면 중국인민재산보험(PICC)과 핑안보험 역시 영향권에 접어들 가능성이 있다.

부동산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가전과 인테리어, 페인트 업체들도 헝다 충격에 올해 주가가 일제히 폭락했다.

이런 피해는 중국 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 의존도가 높은 미국 제조업과 원자재 공급업체, 유럽 광산업체들도 낙진 피해가 예상된다. JP모건체이스에 따르면 미국 제조업체들의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0%에 달한다. 그만큼 헝다 사태에 대한 잠재적 리스크를 갖고 있다는 이야기다. 블룸버그는 제너럴일렉트릭(GE)과 오티스월드와이드, 허니웰인터내셔널, 캐터필러 등을 헝다 관련 주의해야 할 종목으로 지목했다.

유럽 광산업체 상황은 더 심각하다. BHP빌리턴은 리오틴토, 앵글로아메리칸, 글렌코어 등은 회사 전체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훌쩍 넘는다. BHP빌리턴은 중국 비중이 62%에 달한다. 독일 시멘트 제조업체 하델베르크시멘트, 엘리베이터 제조업체 핀란드 코네와 스위스 쉰들러홀딩도 직간접적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이들 회사 주가는 이러한 우려가 반영돼 이달 들어서 10% 안팎의 낙폭을 기록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국 당국이 아예 헝다를 국유화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나온다. 앞으로 상환해야 할 이자와 원금이 줄줄이 대기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헝다가 올해 말까지 지급해야 할 이자만 7억 달러(8246억 원)에 달한다. 내년부터는 6번에 걸쳐 총 76억 달러 상당의 사채 상환 기한을 맞이한다.

CNN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헝다가 3개의 별도 법인으로 분할하는 방안이 조만간 발표될 수 있다고 전했다. 시장에서는 헝다의 국유화에 희망을 거는 전문가들도 많다. 홍콩 제프리스의 스티븐 청과 캘빈 렁 애널리스트는 “헝다가 공기업이 되는 것이 주택 구매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또 단기 유동성 압박을 완화하는 동시에 국내외 채권자들과의 부채 구조조정 협상을 더 쉽게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하이난항공(HNA그룹)때처럼 부채 구조조정에 개입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힘을 받고 있다. 채권자가 일부 손실을 감수하게 하면서 핵심 자산 등을 국영기업에서 인수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중국이 지원에 나설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헝다는 대마불사(大馬不死)라고 할 정도로 큰 기업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구제금융이 없을 것이라는 의중을 관영 언론을 빌려 드러냈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