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 어피너티컨소시엄과의 풋옵션(특정 시점에 주식을 특정 가격으로 되팔 수 있는 권리) 관련 분쟁에서 일부 승소했다. 다만 국제상사중재위원회(ICC)가 신 회장 측에서 주주 간 계약 의무를 위반한 게 맞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리며 또 다른 소송전으로 이어지게 됐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ICC 산하 중재판정부는 교보생명 주주 간 계약 의무 위반 관련 사건에 대한 판결을 내렸다. 이는 지난 2019년 3월 FI 측의 중재 신청으로 시작돼 무려 2년 6개월만에 나온 판결이다. ICC의 중재 판정은 단심제로 법원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
어피너티컨소시엄은 지난 2018년 10월 교보생명의 IPO 지연에 반발해 풋옵션을 행사했다. 어피너티는 딜로이트 안진에 공정시장가격 산출을 의뢰했고, 교보생명을 주당 40만9000원으로 평가지만, 신 회장 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분쟁이 시작됐다.
우선 ICC 중재판정부는 신 회장과 어피너티컨소시엄의 주주 간 분쟁의 핵심인 풋옵션 행사가격에 대해서 신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특히 어피너티가 제출한 40만9000원이라는 가격에 신 회장이 풋옵션을 매수하거나 이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다. 신 회장의 재무적 부담이 덜어진 셈이다. 재판부는 어피너티는 풋옵션 가격이 신창재 회장의 지분을 포함해 경영권프리미엄을 가산한 금액이라고 주장했으나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신 회장이 주주 간 계약에서 ‘IPO(기업공개)를 위해 최선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조항을 위반했다는 어피너티 주장에 대해서는 “2018년 9월 이사회에서 이상훈 이사(어피너티 측)를 제외한 다른 이사들이 모두 IPO 추진을 반대했다는 점에서 주주 간 계약 위반 정도는 미미하며, 신 회장이 어피너티에 손해 배상할 필요는 없다”고 판결했다. 신 회장의 비밀유지의무 위반 여부에 대해서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을 내렸다.
다만 재판부는 신 회장 측의 계약 위반 책임이 인정되며, 풋옵션은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어피너티 측에 따르면 신 회장 측은 지난 중재 심리 기일에서 ‘계약 상 풋옵션 조항이 무효이기 때문에 본인의 가치평가기관 선임 절차를 밟지 않았다’라는 요지로 변론했으나, 재판부는 이에 대해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FI가 풋옵션 가격 산정을 의뢰한 딜로이트 안진은 공신력 있는 독립적 기관으로서 가치평가에 관한 독립적인 결정을 내렸다는 점과 신 회장이 30일 이내에 가치평가보고서를 제출할 본인의 의무를 위반했다고도 판단했다.
어피너티는 이번 결과를 바탕으로 계약이행청구 소송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풋옵션 효력이 남아 있는 만큼, 그에 맞춰 후속 일정을 진행할 전망이다.
어피너티 측 관계자는 “한쪽이 가격을 내지 않아 가격 결정 절차가 충족되지 않았을뿐 풋옵션의 효력은 인정했고 신창재 회장이 계약을 위반했다는 것도 인정됐으므로 조속히 다시 가격이 결정되도록 추가적인 절차를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교보생명 측은 어피니티컨소시엄은 중재판정부가 주주간 계약의 풋조항의 유효성 인정한 부분을 거론하고 있으나, 중재의 핵심 쟁점은 ‘어피니티컨소시엄의 풋행사에 따른 매매대금 청구’였고 이것은 전부 기각됐다고 밝혔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풋조항 자체의 효력에 대한 공방은 중재에서 다뤄진 여러가지 내용 중 하나였을 뿐"이라며 "핵심 쟁점은 어피니티컨소시엄이 주당 40만 9000원에 풋옵션을 행사하겠다는 주장이었고, 중재판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ICC 중재판정부는 신창재 회장이 일부 최소한의 주주간 계약을 위반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어피니티컨소시엄의 풋행사에 따른 일방적인 매매 청구는 인정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신 회장 측이 제기한 현재 어피너티 주요 임원들과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회계사들에 대한 형사재판은 아직 진행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