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만에 다시 온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 공포

이탈리아 전 총리 “유럽 경제 회복의 가장 큰 위협”
미국서도 고용 지표 발표 이후 경고 목소리 커져
아시아 신흥국 공급망 혼란에 상황 더 악화
“소비지출 지연·상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도”

▲베트남 하노이의 한 검문소에서 6일 경찰이 직장인들의 통행 허가서를 조사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이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계속되자 하노이에서 시행 중인 봉쇄 조치를 15일 더 연장했다. 하노이/로이터연합뉴스

저성장·고물가 상황을 나타내는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50년 만에 세계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5일(현지시간) 미국 경제매체 CNBC방송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지난 1970년대 이후 나타난 적 없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마리오 몬티 전 이탈리아 총리는 유럽 경제 회복에 있어 가장 큰 위협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을 꼽았으며, 미국에서도 최근 부진한 고용 지표와 맞물려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경고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몬티 전 총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 경제를 지원하기 위해 시행된 각국 중앙은행과 정부의 완화적이고 막대한 통화정책과 재정부양책이 더 큰 인플레이션을 촉발할 수 있다”며 “동시에 생산 유연성에 대한 많은 제약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문제는 비단 유럽연합(EU)만의 것이 아니다”라며 “많은 국가가 1970년대에 봤던 것과 유사한 스태그플레이션을 겪기 시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에서도 일찍이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등이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경고음을 울렸다. 월가의 대표적인 비관론자 ‘닥터 둠’ 루비니 교수는 지난달 말 미국 금융시장 전문매체 마켓워치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과 많은 선진국에서 물가가 상승하고 있으며, 대규모 통화·재정·신용 부양책에도 성장은 급격하게 더뎌지고 있다”며 “이미 가벼운 스태그플레이션이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부정적 공급 충격은 중기적으로 잠재 성장률을 끌어내리고, 생산비 증가를 불러올 것”이라며 “이 같은 수요와 공급 역학의 부정적 결합은 1970년대 스타일의 스태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코노미스트들의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 단위 %. 기간 올해 3분기~내년 2분기. 검은색:5월 전망치/분홍색:6월/하늘색:7월/노란색:8월. 출처 블룸버그

특히 이러한 우려는 지난달 미국의 고용지표가 발표된 이후 더욱 커지고 있다. 고용 증가세는 급격히 둔화했지만, 임금 상승률이 가팔랐기 때문이다. 급격한 임금 인상은 가뜩이나 미국의 높은 물가 수준에 상방 압력을 가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8월 비농업 고용자는 전월 대비 23만5000명 증가에 그쳐 시장 예상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면서 7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반면 시간당 평균 임금은 예상치(0.3% 상승)의 두 배 수준인 0.56% 상승했다.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은 낮은 코로나19 백신 접종률과 델타 변이 확산에 따른 아시아 신흥국들의 공급망 혼란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선진국으로 정의한 39개국의 백신 접종률은 58%를 기록했지만, 나머지 국가들의 접종률은 31%에 불과했다.

낮은 접종률에 따른 바이러스 확산은 아시아 전역에서 제조, 운송부문에 걸친 문제를 유발하고 있으며, 이는 전 세계적으로 복잡하게 상호 연결된 공급망 혼란을 심화시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차질이 궁극적으로 소비 지출 지연과 상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재닛 헨리 HSBC홀딩스 수석 글로벌 이코노미스트는 “아시아에서 벌어지는 혼란은 전 세계 개인 소비에 걸림돌이 될 수 있으며, 재화의 가격을 끌어올릴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