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고 싶어도 못해요. 가족들이 극구 말렸는데 먹고 살려면 대리기사라도 뛰어야 합니다. 어쩔 수 없죠.”
충남 천안의 자동차부품 제조 공장에 근무하고 있는 김 모 씨(37)는 주 52시간제 시행 후 급여 감소가 심해지자 대리기사 아르바이트에 뛰어들었다. 김 씨는 “주 52시간이 시행되면서 근무시간이 줄었지만, 평소 납품일을 맞추느라 업무 강도는 더 올라갔다”며 “힘든데 소득이 줄어 대리기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투잡’을 뛰는 건 김 씨뿐만이 아니다. 서울 강남구의 스타트업에 재직 중인 조 모 씨(33)는 AI 학습 향상을 위해 온라인에서 직접 라벨을 붙이는 ‘데이터라벨링’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조 씨는 “경력 5년 차인데 사무직이라 세금을 다 제하면 한 달에 200만 원 언저리밖에 못 받는다”며 “근로소득으로 먹고살기 힘든 시대이기에 투잡은 필수”라고 말했다.
두 근로자 모두 50인 미만 사업체에 종사하고 부업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었다. 주 52시간제 근무가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 확대 적용된 지 두 달이 지난 가운데 부업자(투잡족)가 많이 증가하고 있다.
5일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실에서 통계청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5인 이상 30인 미만 사업장의 7월 한 달간 부업자수는 16만4000명으로 전월 대비 4.4%, 전년 동기 대비 19.7% 증가했다. 2003년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다.
주 52시간제가 50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면서 연장근로를 하지 못하는 근로자들이 소득보전을 위해 부업에 뛰어든 것으로 분석된다.
중소기업에 종사하는 부업자수는 중견기업과 대기업 근로자와 비교해 확연히 많았다. 올해 7월 기준 300인 이상 사업장의 부업자수는 전체 부업자 56만6000명 중 2만9000명을 기록했다. 10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을 추가해도 5만 명에 불과했다. 본업 사업장의 종사자 규모가 클수록 부업자수는 반비례했다.
중소기업들은 코로나19로 매출감소와 원자재 가격 상승, 금리인상 등 3중고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주 52시간제 시행 후 인력 부족까지 호소한다.
지방 산업단지에서 플라스틱을 제조 공장을 운영하는 A 중소기업 사장은 “52시간제 시행 후 인력이 부족해 계약 업체들에 공급량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통보했다”며 “임금도 줄으니 직원들이 퇴사하고 있고 인력을 구하기도 힘들다”고 호소했다.
근로자와 사업주는 주 52시간제 적용이 ‘일과 삶’의 질을 개선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지적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7월 말 중소기업중앙회 부산울산지역본부가 50인 미만 중소기업 116개사 근로자를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주 52시간 적용에 따라 ‘워라밸’이 개선되지 않았다(33.6%)고 답한 비율이 ‘그렇다’는 응답률의 2배에 달했다.
근로자들 대다수(94.9%)는 워라밸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경제적 여유 부족(급여감소)을 꼽았다. 또 근로자 64.7%는 연장근로를 희망했다.
이들은 중소기업에 한해 월연 단위 추가연장근로 허용과 탄력 근로제 절차 완화를 가장 필요한 대책이라고 했다.
허현도 중소기업중앙회 부산울산중소기업회장은 “일본의 경우 노사합의 시 월ㆍ연 단위 연장근로 한도를 부여해 근로시간 운용의 유연성을 높이고 있다”며 “연장근로를 통해 투잡을 하지 않아도 소득보전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업장의 규모와 무관하게 획일적으로 52시간제를 적용한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 52시간제로 직장인의 근로시간이 줄었지만, 오히려 임금감소로 투잡, N잡 등으로 개인의 근로시간은 늘었다”며 “중소기업 실적에 맞춘 탄력적인 근로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주 52시간제가 근로자를 보호하려고 만들었는데 부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게 해 근로자를 보호하지 않는다”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현장 상황은 너무나 달라 획일적인 규제가 아닌 유연성 있는 근로시간 권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