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뮤지컬 작곡가로 변신한 이범재 "뮤지컬계 유재석 되고 싶다"

입력 2021-08-28 06:00 수정 2021-08-28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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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그레이'로 첫 뮤지컬 작곡 나서…"음악 안에서 다양한 것 보여드리고파"

▲팝 피아니스트 겸 음악감독 이범재가 18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이투데이DB)
▲팝 피아니스트 겸 음악감독 이범재가 18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이투데이DB)
이범재의 이름 앞엔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다. 뮤지컬 '쓰릴 미', '라흐마니노프', '미드나잇: 액터뮤지션' 무대 위에서는 피아니스트로서 존재감을 드러냈고, 뮤지컬 '투모로우 모닝', '오디너리데이즈' 등에선 음악감독으로 나선 이력 때문이다. 그런 그가 '범피'(범재 피아니스트), '범감'(범재 감독)에 이어 새로운 별칭에 도전한다.

"아직 못 보여드린 게 많아요."

최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있는 뮤지컬 '웨딩 플레이어' 연습실 인근에서 이범재를 만났다. 대학로에서 그를 모르면 간첩(?)이다. 최근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뮤지컬 '와일드 그레이'의 전 넘버를 작곡해 다시 한번 눈도장을 찍었다.

"가사를 쓴 이지현 누나와 함께했어요. 누나가 가사 초안을 보내주면, 피아노로 작곡 스케치를 하고 구조를 만들었어요. 감 잡는 데까진 시간이 좀 걸렸어요. 전체적인 톤을 잡는 게 어렵더라고요. 이렇게 많이 사랑해주실 줄 몰랐어요."

이범재는 한때 '한 가지만 파라', '재주가 많으면 빌어먹고 산다'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혼란스럽기도 했다. 모두 정리하고, 한 가지만 해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음악'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머릿속이 정리됐다. "결국 저는 음악하는 사람인 게 맞더라고요."

다음은 이범재와 일문일답.

- 암전 상태에서 첼로 선율이 흐르며 극이 시작된다. 그리고 '안개'라는 넘버가 펼쳐질 땐 피아노 선율이 깔린다. 이때 오스카 와일드와 로스의 관계성이 그려지기 시작한다. 극의 포문을 여는 선율과 넘버여서 신경 쓰는 지점들이 있었을 거 같다.

"작가님하고 전체적인 톤을 처음 잡은 게 '안개'였어요 일차적으로 고증이기도 하지만, 영국 특유의 날씨를 떠올렸어요. 제가 영국의 특유 느낌을 좋아해요. 영국 드라마도 많이 봤죠. 또 이들의 관계를 풀어나갈 때도 이건 사랑이다, 이별이다 정하지 않았죠. 인물들이 가진 복잡함을 '안개'로 표현했어요."

- 첫 작곡이라 그런지 틀에 박히지 않은 듯했다.

"정확히 말하면 제 스타일이 처음 공개된 거잖아요. 그래서 신선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저는 이 작품을 일종의 독립영화라고 생각하고 만들었어요. 뮤지컬 기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저도 두세 개 하면 뻔하게 느껴질 수 있지 않을까요? "

- 넘버 '살로메'는 탱고 풍이다. 다양한 장르가 섞이는 넘버를 선호하는가.

"고대 음악을 섞어서 만든 넘버예요. '살로메' 자체가 성경에 나온 이야기잖아요. 그래서 고음악의 기법을 가져온 거죠. 거기에 섹슈얼리즘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탱고가 적합했죠. 오스카 와일드가 살던 시절에 흥한 장르는 아니지만, 이전부터 존재했던 장르더라고요. 아휴, 작곡하는 데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애증의 곡이에요. 버전만 13~14개예요. 수정 1, 2부터 2-1, 3-1까지 나왔어요. 팬들이 이 곡을 이렇게 좋아해 줄지 몰랐어요. 지금은 웃으면서 말하네요."

- 넘버 전개가 '미드나잇: 액터뮤지션'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무의식적으로 나온 것도 있을 거예요. 다른 장르도 많이 써보려고 했는데 한계점이 있었어요. 밴드 없이 피아노랑 현악기만 사용했을 때 제일 리드미컬하게 들리는 걸 찾아냈죠. 그게 탱고였고요. 퍼커션이 들어와도 탱고 음악을 사용했을 것 같아요."

- 전체적으로 악기 조합을 어떻게 이뤄내려 했나.

"악기의 조합이라기보다 편곡하기 전에 '여기서 현악기 나오면 좋겠다'라는 식으로 조금씩 체크했어요. 또 시작과 마지막을 쓰는 게 제일 어렵거든요. 그래서 앞뒤 곡을 거의 마지막까지 다듬었어요. 첼로와 바이올린 등 악기를 쓰는 건 상상으로 만들었다가 한 번에 혼합했죠."

▲팝 피아니스트 겸 음악감독 이범재가 18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이투데이DB)
▲팝 피아니스트 겸 음악감독 이범재가 18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이투데이DB)

- 과감하고 자유로운 예술가 오스카 와일드, 부서져 가는 자신을 구하기 위해 예술을 탐하는 알프레드 더글라스(보쉬), 오스카 와일드의 모든 것을 동경하고 늘 그의 곁을 지키는 로버트 로스까지. 작곡할 때 관계성을 신경 썼나.

"관계보다 각자의 캐릭터를 더 보여줄 수 있는 음악을 쓰려 했어요. 단순하게 '이 멜로디가 나오면 이 캐릭터가 생각난다'는 식으로 하고 싶진 않았어요. 넘버를 들을 때 장면이 떠오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죠. 캐릭터마다 주는 음악의 느낌과 결을 맞추려고 했어요. 전체를 그리면서 각자의 음악적 포인트를 줘야 하는 작업이 정말 힘들어요. 장면으로 기억하셨다면 저는 성공이에요. 하하."

- '와일드 그레이' 넘버 중 어떤 곡을 가장 좋아하나.

"'당신의 눈'이요. 제 색을 가장 잘 담은 곡인 것 같아요. 30분 만에 썼어요. 가사 받은 대로 바로 쭉쭉 갔죠. '시간을 멈추고 싶어, 이 순간이 꿈인 것만 같아'라는 가사를 듣고 저만의 낭만대로 썼어요. 상상해왔던 느낌을 풀어냈죠. 그다음 가사가 '누구도 무엇도 아닌 내가 될 수 있는 곳'이에요. 가사가 너무나도 와 닿았어요. 어떤 편견도, 잣대도 없이 그저 나라는 사람으로 보이길 꿈꿔요. 제겐 숙제예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도 틀을 만들어버린 거로 생각해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가는 건 저만의 음악적 유토피아예요."

- '와일드 그레이'를 상징하는 넘버인가.

"네. 결국, 이들이 하고자 하는 건 '아름다움'이라기보다 그들이 원했던 것에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를 쓴 거라는 걸 보여주는 넘버예요. 오스카 와일드와 보쉬 그리고 로스가 갈망하는 걸 단어 하나로 표현하는 건 어려워요. 고증했어요. 와일드는 '유미주의자'고,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이라 했을 뿐이에요. 저는 이 극이 단순히 성 소수자 이야기로만 보이지 않길 바랐어요. 그 시대 사람들의 고민이 우리와 다를 게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고, 이 넘버에 잘 묻어났죠."

- 작곡가의 시선에서 배우마다 어울리는 넘버를 꼽는다면.

"에녹 '와일드 그레이', 박민성 '초상화', 정민 '편지', 홍승안 '기억나', 배나라 '안개', 안지환 '동화', 박준휘 '당신의 눈', 정휘 '더러운 피', 백동현 '초상화 2' 입니다. 배우와 색깔이 잘 맞아서 자연스럽게 며드는 넘버를 골랐어요."

- 뮤지컬에 처음 발을 들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처음 말해보네요. 예전에 우란문화재단 '프로젝트 시야'에서 신인 배우를 발굴할 때 악기하는 선배를 통해 피아니스트로 참여하게 됐어요. 김성철, 안은진, 백형훈, 김리 배우가 나왔죠. 그때 여러 감독님을 알게 됐고 뮤지컬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어요. 무대 위에 피아노 하나 놓고 가운데서 배우들이랑 놀았거든요. 이후 뮤지컬 콘서트 '히즈피아노'를 하고 팝 피아니스트로서 제가 만든 앨범으로 활동하다가 뮤지컬 음악 감독, 작곡까지 하게 됐네요."

- 뮤지컬 작곡이 힘들었고 고통스럽다고 했다. 그런데도 또 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가.

"먹고 살려면 해야죠. 정말 중요한 이야기예요. 공연 업계 스태프는 정말 박봉이에요. 항상 끊임없이 일하는 이유죠. 그렇다고 힘들게만 보이는 것도 싫어요. 양날의 검이에요. 좋아서 하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팝 피아니스트 겸 음악감독 이범재가 18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이투데이DB)
▲팝 피아니스트 겸 음악감독 이범재가 18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이투데이DB)

- 다음 작품인 '웨딩 플레이어'에 대해서도 설명해달라.

"피아니스트의 이야기예요. 지금 현시대를 살아가는 음악하는 사람들을 가장 잘 대변하는 이야기입니다. 또 자존감에 대한 극이에요. 지금 내가 느끼는 걸 토대로 한 발자국 나아가서 좀 더 나아지는 상황을 보여주는 이야기죠.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거예요. 1인극이에요. 배우들이 정말 열심히 하고 있어요.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 꿈이 무엇인가.

"이범재의 곡은 클래시컬하고 서정적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동안 그런 모습만 보여드렸던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것보다 잘할 수 있는 거 위주로 보여드렸기 때문인 것 같아요. 다음 작품을 하게 된다면 코미디, B급 뮤지컬을 하고 싶어요. 틀에 갇히고 싶지 않아요. 제가 가진 '똘끼'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피아노 한 대 놓고 신나게 노는 스탠드업 쇼도 할 거예요. 무대에서 피아노 치는 것보다 말하는 게 편하거든요. 하하. 뮤지컬계 유재석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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