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운의 혁신성장 이야기] 여론조사는 만능인가

입력 2021-08-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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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대선을 맞이하여 여론조사가 난무하고 있다. 매일 쏟아지는 여론조사 기사로 현기증이 날 정도다. 현재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등록된 여론조사 업체는 79개에 이른다. 이 업체들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7개월 동안 수행하였다고 등록한 여론조사가 449건이고 이 중에 제20대 대통령 선거와 관련한 여론조사가 202건에 달한다.

여론조사는 민주주의와 더불어 꽃을 피운다. ‘주권재민’을 우선시하는 민주사회에서 정치 지도자는 누구나 국민의 뜻을 앞세운다. 정부는 정책을 수립할 때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결정하고자 한다. 국민의 뜻과 요구를 파악하는 가장 효율적이며 경제적인 방법이 여론조사이다. 그러다 보니 지나치게 여론조사에 의존하고 그 결과를 맹신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지금 정부 들어와 정책 결정에서 여론조사 비중은 매우 커지고 있다. 민감하고 복잡한 이슈에 관한 정책일수록 여론조사 결과를 반영해 결정한다. 그러나 과연 여론조사가 진정으로 국민의 뜻을 알려주며 조사결과에 따른 결정이 전체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여론조사에는 여러 가지 한계가 있다. 한 가지를 놓고도 어떻게 조사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타난다. 누구를 대상으로 무엇을 어떻게 물어보느냐에 따라 응답이 달라진다. 조사방법에 따라서도 결과가 다르게 나타난다. 전화면접, 자동응답시스템(ARS), 인터넷 조사에 따라 다르고, 전화면접도 무선과 유선의 비율에 따라 달라진다.

이런 방법론적 한계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첫째, 응답자가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사실에 관해 조사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기업들은 혁신적인 신제품을 개발할 때 소비자조사를 통해 결정하지 않는다. 신기술 제품이 무엇인지 경험해 보지 않은 소비자에게 물어봐야 답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소비자조사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람들은 직접 물건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는 이유에서다. 조사란 ‘Black Box’인 응답자의 생각을 알기 위해 하는 것인데 ‘Empty Box’이면 조사해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예를 정책 여론조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언론중재법에 대하여 국민의 과반수가 찬성한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국민들이 언론중재법을 얼마나 이해하고 응답한 것일까? 과거에 유례가 없는 새로운 법안이나 정책에 관하여 여론조사를 통해 의견을 구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둘째, 복잡한 이슈에 관해 여론조사하는 것은 편향된 결과를 낳는다. 많은 정보와 지식이 필요한 질문을 일반 국민에게 물어보면 응답을 얻더라도 신빙성이 떨어진다. 대부분은 단편적 선입관에 쏠려 감성적인 답을 하기 마련이다. 이전에 원자력발전소의 운영 여부에 관한 여론조사에서 대다수 국민은 ‘판도라’ 영화의 장면을 연상하며 답했을 것이다.

이런 복잡한 이슈에 관한 설문에는 상세한 정보와 자료를 제공하여 학습을 시키고 응답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자칫 응답을 유도하는 의도로 오해될 수 있다. 가령, 원자력발전소의 운영 중단이 전기료 인상을 초래한다고 설명하면 찬반 의견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복잡한 이슈는 여론조사보다 공론화위원회와 같은 방법이 더 유용한데 왜 사용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셋째,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하면서 응답하는 성향이 결과를 왜곡시킨다. 사회적으로 당위성을 갖는 답(socially desirable answer)을 선택하는 것이다. 친환경 제품에 대한 인식조사에서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 제품을 사용할 것이냐고 물어보면 당연히 그렇다고 답한다. 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친환경 제품을 잘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통일이나 복지에 관한 여론조사에서 이런 성향이 자주 나타난다.

넷째, 개인의 이해관계가 걸린 정책을 여론조사로 결정하는 것이다. 무상급식이나 보편적 복지에 관해 여론조사하면 찬성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온다. 국가적으로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본인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에 찬성하는 것이다. 전국민 재난 지원금이나 기본소득도 여론조사로 결정하면 당연히 지지의견이 높게 나올 것이다. 부자 증세나 종부세도 여론조사를 해 보면 찬성비율이 높게 나온다. 국가 전체를 보아야 하는 정책을 여론조사로 결정하는 것도 포퓰리즘의 일종이다.

다섯째, 민감한 질문에는 의도적으로 왜곡해서 답한다. 조사결과가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를 예측해 거기에 맞는 답을 선택하는 것이다. 본인의 생각과 다르게 답한다고 하여 ‘역선택’이라 부른다. 각 정당에서 대선 주자를 국민여론조사로 선정할 때 역선택을 어떻게 거르느냐가 문제가 되고 있다.

국민의 생활에 영향을 주는 법률과 정책을 결정하는 데 여론조사는 필요하다. 하지만 여론조사에만 의존해 결정하는 것은 무분별하며 무책임하다. 변화무쌍한 여론조사 결과에 일희일비하며 휘둘리기보다는 소신 있는 정책을 세우고 국민을 설득하려는 용감한 혁신가의 출현이 기다려진다. 소비자에게 끌려다니지 않고 미래의 혁신을 보여준 것이 애플의 성장 원동력이라는 교훈이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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