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기업 화이자가 바이오엔텍과 공동연구를 한 이유는 특허 때문이다. mRNA 관련 원천특허는 헝가리 출신인 커털린 커리코(Katalin Kariko)가 펜실베이니아 대학에 근무하던 2005년에 출원했다. 특허를 소유한 펜실베이니아 대학은 생명과학 기업인 셀스크립트에 독점실시권을 넘겼고, 셀스크립트는 모더나와 바이오엔텍에 다시 실시권을 허락했다. 바이오엔텍은 2013년에 발명자 커리코를 영입했으며, 모더나는 2010년부터 커리코의 특허를 바탕으로 연구하던 회사였다.
커리코 이전에 아무도 mRNA를 세포에 주입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던 이유는 세포의 면역반응으로 mRNA가 파괴되어서였다. 커리코 역시 계속된 실패로 연구비도 받지 못하는 상황까지 몰렸지만 면역체계를 통과하는 방법을 개발해 냈고, 자신이 발명한 기술임에도 그 특허를 실시할 권한이 다른 곳으로 넘어가자 특허 실시가 가능한 방법을 찾아서 마침내 백신 개발까지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기술의 가치를 내다보고 공동개발 투자결정을 내린 화이자의 판단 또한 빛났다.
화이자는 2차대전 말에도 회사의 역량을 쏟아부어 페니실린 양산에 성공한 경험을 가진 기업이다. 페니실린은 1928년에 플레밍이 발견한 뒤 잊혔다가, 후속연구를 통해 1941년에 기적의 항생제임이 확인되기도 했지만 대량생산은 못하던 상태였다. 전투 중 사망자보다 상처 부위의 감염으로 더 많은 병사가 죽어가던 상황이었으므로 전쟁에서 항생제는 꼭 있어야 했다.
화이자는 3년간의 연구를 통해 페니실린의 대량생산에 성공했다.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미군에 보급된 페니실린의 90%는 화이자 제품이었으며, 화이자는 생산방법 특허를 취득했다. 플레밍의 1945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에는 화이자의 페니실린 양산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화이자와 모더나의 백신 개발 성공으로 커리코가 노벨상을 받게 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문환구 두리암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